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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11. 2024

가는 데는 순서 없어도 엄마의 순서는 아직 멀었기를

우리들의 모래시계는 흐르고 있다. 엄마와 나의 모래시계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느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하지 못했다.

40대 초반까지는 만성 피로 외에 특별히 아픈 곳이 없어 나이 듦에 대해 그다지 아쉬움도 없었다.

솔직히 말함 나이가 주는 몸의 신호를 찾아내 교정하고 관리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다 40대 중반에 진입하자 뜬금없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다.

그간의 상식으로 몸이 아프기 전에 부상을 입는다거나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발목을 삐끗한 후 발목이 아프거나 평소보다 많이 걷고 난 후 발바닥이 아프거나 해야는데 아무런 선행조건이 없음에도 느닷없이 그냥 아프다.


그렇다.

이제는 특별히 다치지 않았어도, 별다른 이유 없이 몸이 아프다. 참 낯선 몸의 반응이다.


40대 막바지의 나도 이렇게 몸이 삐그덕거리는데 76세인 엄마는 얼마나 삭신이 쑤실지 가늠조차 안된다.

엄마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나름의 논거로 나이 들어 몸이 아픈 이유를 단순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다.


'아파야 죽지. 나이 들어 안 아프면 죽겠냐? 죽으려고 아픈 거다'

노화에 대한 구구절절 의학적 소견은  아니지만 참으로 우문현답이다. 


건강할 때 죽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생소한 단어일 뿐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몸이 아프면 죽음을 떠올리고 머지않아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게 된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반려견을 떠나보낸 후 시간의 유한함을 뼛속 깊이 체감 중이다. 

사실 잊고 살아 그렇지 우리 모두 죽음이란 목적지를 향해 질주 중이다. 50대를 목전에 두니 누군가 엑셀 위  발등을 꾹 찍어 눌러주는지 쾌속 질주하는 기분이다.


엄마 표현에 의하면 세월 잠깐이란다.

잠깐 한눈 한번 팔았더니 노인이 되어버린 형국인 거다.

시간의 무자비함과 돌아보니 부질없는 세월에 엄마도 나도 어리둥절하다.

엄마 환갑 축하한다고 가족행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나 흘렀다.

내 기억에 엄마가 환갑 때만 해도 꽃청춘이었다.


씩씩이 역시 무지개다리 건너기 불과 1년 전만 해도 팔팔 모드였다.

씩씩이를 갑작스레 떠나보내며 시간의 유한함과 죽음이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있음을 자각했다. 

평균수명 대비 남아있는 양적 시간을 추산하며 지금 이 순간을 더 값지게 보내고 싶어졌다.  

사실 평균수명만큼 내가 산다는 보장은 없지만 여하튼 요즘은 하루하루가 너무 귀하고 순간순간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아쉽다.


씩씩이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나 역시 언젠가 죽는다는 명제가 깊이 와닿았고 이로 인해 내 삶을 수시로 점검하며 궤도와 방향이 어긋났다 싶을 때는 과감히 방향을 튼다.


과거 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며 많은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았고 가까이는 조부모님의 죽음도 지켜보았지만 애착이 없었던 대상과의 이별은 내게 큰 파급력이 없었다. 하지만 애착이 컸던 자식 같은 반려견의 죽음은 달랐다. 어쩌면 이제야 내가 죽음을 의미를 수용하고 삶에 반영할 준비가 된 것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인생의 길흉화복. 생로병사.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경험하고 나서야 모래시계 속 보드라운 모래 빠지듯 훅 줄어드는 게 시간이라는 것을. 또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것을 숙고하고 나서야 내 삶의 진정한 조타수가 되었다. 


오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데는 순서 없다는 말이 있다.

사실 그 말의 진위는 아무도 모를 일인지라 일단 온 순서로 간다는 대전제 하에 다음번 순서는 '엄마'차례다.


개인적 바람으로 엄마의 순서는 한참 멀었으면 좋겠다.

아직 엄마에게 못해준 것이 너무 많다.

21살에 독립해 28년간 떨어져 살았으니 엄마와 함께한 물리적 시간이 적은 만큼 쌓은 추억도 많지 않다.  먹고살기 바쁘단 핑계로, 또 내 사사로운 삶의 과제에 매몰되어 엄마를 성심껏 돌봐드리지 못했다.


이 글을 빌어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 둘째 딸이 호강까지는 아니어도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의지할 수 있는 언덕이 되어 드릴게요. 앞으로 오래 살아야 하니 건강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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