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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니현 Jul 27. 2024

엄마 된장찌개와 김치찌개의 추억

엄마와 나, 그리고 내 식탐의 연결고리

평소 식탐이 많은 편이었다.

이제 중년의 나이에 이르니 식탐을 감당할 정도의 위장 기능도 받쳐주지 못하고, 늘어나는 뱃살이 건강에 치명적인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식탐도 줄어들었다.


사실 식탐이란 게 줄이고 싶다고 금방 줄여지는 건 아니었다.

음식에 대한 강한 열망과 충동은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습관이기에 식탐을 줄이기 위해 나름 노력했는데 가장 먼저 식탐의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가장 큰 첫 번째 원인은 감정적 허기였다.

어릴 적 저녁 즈음 동네 슈퍼에 들러 물건을 사면 방 안에서 주인아주머니가 가족들과 식사를 하다 말고 돈을 받곤 했는데 그때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단란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종종 곁눈질로 쳐다보곤 했다. 주인아줌마가 차려낸 보글보글 맛있는 찌개와 다양한 반찬들이 놓인 밥상이 먹음직스러웠고 온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엄마 없이 우리끼리 배고플 때마다 각자 알아서 밥에 간장을 비벼 먹었던 우리 집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식사 풍경이었다. 음식이란 단순히 배고픔을 잠재우기 위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 이상의 정서적 풍요와 행복감, 만족감을 담고 있다. 그렇게 음식의 결핍은 정서적 결핍으로 이어졌고 정서적 결핍은 더욱 음식에 집착하게 하면서 악순환을 이루었고 그 결과 식탐을 만들어 냈다.


두 번째 식탐의 원인은 현실적으로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배불리 먹지 못하고 자란 탓이다.

어린 시절 내 주된 섭취 영양소는 탄수화물이었다. 과일이나 고기와 같은 단백질은 아빠 제삿날이나 먹을 수 있었는데 우리 자매들은 아빠 제삿날만 되면 평소 못 먹던 음식 앞에 이성을 잃고 과식한 나머지 밤새 체기로 고생을 했다. 간식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인지라 평상시 주린 배를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은 바로 '밥'이었고 청소년기 내 밥그릇은 큼지막한 국그릇이었다. 다행인 건 3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지 않아도 아빠의 유전적 영향으로 내 키는 언니와 동생에 비해 큰 편이다. 하지만 탄수화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 내 몸무게는 매년 10kg씩 증가해 3년간 30kg이나 찌는 기염을 토하고 말았다.


어린 시절 음식과 관련한 추억을 떠올리면 참 다채롭다.

하지만 그 추억의 기본 바탕은 허기짐과 배고픔이었다.

아빠가 밖에서 돈을 벌고 엄마가 전업주부로 집에서 끼니와 간식까지 살뜰히 챙겨주는 환경이 아니었던지라 배꼽시계가 울려대면 각자 알아서 집으로 들어가 밥에 간장만 넣어 대충 비벼먹었다. 밖에서 일하고 온 엄마가 집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밥그릇을 줍는 것이었다고 하니 세끼 식사시간에 대한 개념을 습득하지 못한 채 배가 고플 때마다 수시로 밥에 간장을 비벼먹으며 허기를 달랜 것 같다.


그러다 국민학교 시절 엄마가 미용실을 시작하면서부터 아침이 되면 언니와 동생과 나는 학교 갈 채비를 해서 시내에 있는 미용실로 가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고 등교를 했다.

그렇게 밥을 먹겠다고 졸린 눈을 비비며 매일매일 때마다 시내에 있던 엄마의 미용실로 향했다.

미용실에서는 우리 가족뿐 아니라 손님들도 함께 밥을 먹었는데 엄마는 식사시간에 우리끼리만 밥을 먹을 수 없다며 대기하는 손님들에게도 꼭 수저를 건네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다 내가 중학생 즈음 엄마가 집에서 야매미용업을 시작하면서 손님들 없이 우리 가족끼리만 식사를 하게 되었다. 엄마의 야매 미용실은 박리다매를 표방했고 시골 우리 집은 당시 버스터미널과 가까웠기에 시골 할머니들의 파마 성지가 되어 문전성지를 이루었다.


그때부터 우리 집 형편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엄마는 아침마다 딸들 도시락 반찬을 위해 동네 슈퍼에서 찬거리를 사 오셨다. 어묵을 사 와 간장에 조려주었고 콩나물을 사 와 무침을 해주었고 참치를 양은냄비에 넣고 살짝 끓여 상에 올리는 날도 있었다. 또 우리 집 밥상에 국이나 찌개는 필수였는데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메인이었다.


국을 차려내는 엄마의 공식은 매우 간단했다.

김치째개가 구장창 밥상에 올라오고 한 달 이상 먹어 물리면 누군가 반찬 투정을 한다. 그러면 엄마는 알겠다면서 그다음 날은 된장찌개를 상에 올린다. 또 그렇게 된장찌개를 한 달 이상 먹고 누군가 투정을 하면 엄마는 다시 김치찌개로 바꿔 상에 올렸다.


그렇게 매달 주기적으로 반복되던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싫증나 둘 다 먹기 싫다고 투정하면 새 메뉴가 등장하는데 바로 콩나물국이다. 하지만 콩나물국은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기에 딸들의 민원이 잦아들 때면 다시 김치찌개가 재등장 한다.


엄마는 어린 시절 풍족히 먹이지 못한 게 미안한지 한때 명절 때만 되면 다 먹지도 못할 많은 양의 온갖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제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딸들은 엄마의 음식에 군침을 흘리기보다 엄마가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을 수고로움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각자 알아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지라 엄마의 음식이 어린 시절만큼 간절하지도 않다.


하지만 어릴 적 자식들 끼니를 살뜰히 챙기지 못한 것을 내심 미안해하는 엄마의 속내를 알기에 나는 엄마가 싸주는 음식은 물리치지 않고 받아와 냉장고에 쟁여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버리지 않고 남김없이 먹으려 한다. 한편으로 엄마가 만든 음식을 아직도 맛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또 요즘은 엄마집에 가도 외식보다는 엄마가 차려준 집밥을 먹는다.

한때 다 큰 딸이 연로한 노모가 차려준 밥상을 받는 게 죄송하고, 평생 집밥만 고집해 온 엄마가 안쓰러워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드셔보길 바라는 마음에 외식을 했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손수 만든 음식을 딸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 엄마의 행복한 웃음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엄마. 엄마가 해준 우렁된장찌개는 최고예요. 다음에 가면 된장찌개 해주세요. 건강 유지하셔서 오래오래 된장찌개 끓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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