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딸! 삼대에 걸친 업그레이드!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추억의 힘!
초등학교 입학 전 당일 가족여행으로 대천해수욕장에 놀러 간 적이 있다.
40여 년도 더 지난 추억이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어린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던 가족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행이 마지막인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에게 삶은 안전이 보장된 안락한 실내 놀이터가 아닌 아슬아슬한 지점을 수차례 넘기며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바둥거려야 했던 야외 익스트림 스포츠 자체였기 때문이다. 생존이 목적인 삶에 여행의 여유가 깃들 공간은 없었다.
사실 그 여행도 엄밀히 말하면 앞집 아줌마 모녀와 우리 가족이 함께 간 소풍이었다. 당시 동생은 어려서 할머니댁에 맡겨졌는데 첫 여행에 혼자만 제외된 게 많이 서러웠는지 아직도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딱 한 번의 여행이었지만 그 설레었던 기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어릴 적 가족 여행의 기억은 평생에 걸쳐 행복자산으로 영구 적립되나 보다.
그 기억의 한 자락을 붙잡아 나 역시 딸이 어릴 때부터 함께 여행을 다니려 노력했다.
또 주말마다 전시회. 공연. 영화 등 다양한 문화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가 주도하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계획형 인간이다 보니, 여행 전부터 여행지 내 음식점, 관광지 등 들려야 할 장소의 거리와 동선까지 계산해 일정을 짜고 딸과 여행을 가면 딸 취향, 엄마를 모시고 가면 엄마의 취향에 맞춰 행선지를 정하다 보면 여행 시작 전부터 지치기 일쑤였다. 이런 내게 딸과의 여행은 정말 모성애로 이룬 성과이자 시도였다.
하지만 예민한 기질의 딸과 함께하는 여행이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나는 목표 달성. 성취지향형 인간으로 여행이라는 행위를 또 다른 목표로 삼아 열심히 여행해야 한다는 사고에 몰두해 여행조차도 성취과제로 인식했던 시기여서 딸에게 아주 편안한 여행 동반자는 못되었을 테다.
어쨌든 내 진심은 딸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 행복했던 추억을 연료 삼아 고된 현재를 버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가끔씩 모든 걸 놔버리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딸에게 그런 순간이 찾아온다 해도 어릴 적 행복했던 추억이 도움닫기 에너지가 되어 다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이 본인보다 더 나은 삶을 살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어릴 적 불행했던 기억을 치유하려 긴 시간 몸부림치며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냈지만 내 딸은 행복한 기억을 추억 삼아 역경의 시간을 이겨냈으면 좋겠다. 행복한 시간은 누구의 조언 없이도 잘 살아간다. 문제는 고난의 시간으로 이 시간을 잘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 또한 부모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도 내가 딸에게 갖는 바람을 가졌을 테다.
엄마는 그 바람으로 내게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를 본인의 삶에 빗대어 아주 직관적으로 명료하게 말해주곤 했다.
'엄마가 이렇게 고생하는 건, 많이 배우지 못해서야.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엄마의 이 말처럼 내게 동기부여가 된 말은 여태껏 없었다.
일견 흔한 부모의 잔소리로 치부할 수 있었지만 엄마의 지난한 고생을 똑똑히 지켜봤던 나로서는 엄마의 저 말은 진실이자 참으로 각인되어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촌철살인과 같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말 따위는 없다.
지금 딸이 놓인 상황과 어릴 적 내가 놓인 상황이 다른 데다 딸과 나는 기질적으로 반대 성향을 가진 완전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딸이 공부를 잘해 성공한 삶을 살기보다 진심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
사회적 성공이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지만 성공과 실패 여부와 상관없이 딸이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하고 누릴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우리는 실패한 순간에도 행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행복은 성공한 상황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삶이 바닥을 치고 있는 순간에도 우리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어떤 순간에도 행복해질 수 있는 각자만의 비책 하나쯤은 겸비해 두어야 한다.
나는 청소년기에 집이 불편해 밖으로 겉돌았지만 딸은 자기 방 안에서 하루 종일 뒹굴거리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 그 어떤 것도 집에서 뒹굴거리는 행복감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어린 시절 내 문제로 고민하기보다 엄마 걱정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낸 나와 달리 딸은 엄마는 오로지 자기 자신으로 클 수 있도록 해주었다고도 했다.
확실한 건 엄마보다는 내가,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딸이 좀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대를 거듭할수록 좀 더 나은 환경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좀 더 많은 행복 비책을 가진 사람으로 대대 손손 이어진다면 더 바람이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저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딸은 방에서 뒹굴거릴 때가 행복하고, 나는 조용한 카페에서 멍 때리거나 혼자 산책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엄마는 초저녁에 자려고 불 끄고 누웠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 삼대가 각자만의 행복 비책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 최고 행복한 순간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