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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빙어낚시

겨울은 길다, 고로 즐겨야 한다

by 어떤 하루

홋카이도의 겨울은 길다. 11월부터 첫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겨우 눈이 녹는 3월 말까지, 일년 중 다섯 달이 겨울인 셈이다. 게다가 홋카이도에서 겨울은 곧, 눈. 눈이 한없이 내린다. 홋카이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중에는 지긋지긋한 눈, 좀 그만 왔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관광객들에겐 꿈의 풍경이지만, 현지인들에겐 가끔씩 애증스럽기도 한 눈.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기나긴 홋카이도의 겨울을 즐기면서 생활하고 있다. 스키, 스노보드 등의 겨울 스포츠뿐만 아니라, 홋카이도 겨울 레저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빙어낚시(ワカサギ釣り)'다.


일본의 다른 지방에서도 빙어낚시를 할 수 있지만, 꽁꽁 얼은 빙상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게 홋카이도만의 매력이다. 겨울이 긴 덕분에 1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 약 두 달 동안 할 수 있고, 멀리 가지 않아도 삿포로에서 1시간 거리의 근교에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삿포로 근교에서 빙어낚시 즐기기 #1. 미카사 가쓰라자와 호수(三笠 桂湖)

삿포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남짓 떨어진 곳에 위치한 '미카사'. 이 지역은 홋카이도 내에서도 특히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기온도 삿포로보다 더 낮다. 미카사의 가쓰라자와 호수는 이전에도 몇 번 빙어낚시를 하러 갔었는데, 낚시의 '낚'자로 모르는 생초보인 내가 인생 첫 낚시에서 남편과 둘이서 300마리 정도를 잡았었다.

이번에도 부푼 기대를 안고 새벽부터 가쓰라자와 호수로 출발. 다들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서 낚시 중이다. 홀로 낚시 족부터 가족, 친구, 연인들이 낚시를 즐긴다. 가쓰라자와 호수의 낚시장은 관리 낚시장으로 관리인이 상주하고 얼음구멍도 미리 다 뚫어져 있다. 작은 매점에서 낚싯대, 먹이, 낚싯바늘 등을 팔고 렌털용 텐트도 있어서 특별한 장비 없이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이날의 최저 기온은 마이너스 18도. 텐트 없이 낚시를 하기에는 너무 추웠다. 얼음구멍도 자꾸 얼어버리고 손은 손대로 안 움직인다. 빙어를 잘 잡으려면 무엇보다 먹이를 부지런히 갈아줘야 하는데 너무 추워서 잠깐 낚시하고 또 잠깐 쉬고를 반복하다 보니 수확이 거의 제로였다. 심지어 잡힌 빙어마저도 얼어버렸다.

무슨 깡인지 우리는 텐트 없이 온몸으로 영하 18도의 칼바람을 맞았다.


삿포로 근교에서 빙어낚시 즐기기 #2. 조잔케이 삿포로 호수(定山 さっぽろ湖)

관리 낚시장이 편리한데 비해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다 보니 낚시를 좀 더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에게는 심심하기 마련이다. '빙어낚시'하면 얼음구멍도 직접 뚫어보고 싶고, 방류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빙어를 잡고 싶기도 하다. 온천 마을로 유명한 '조잔케이' 근처에 있는 '삿포로 호수'는 비관리 낚시장으로, 빙어낚시를 좀 더 제대로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장소이다.


남편은 한번 빙어낚시에 맛들리더니 관리 낚시장은 시시하다고 자꾸 찾아가기 험난한 곳만 골라 다닌다. 물론 비관리 낚시장이 재밌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워낙 정비가 안 되어 있다 보니 텐트며 낚시 장비며 전부 짊어지고 호수까지 내려가는 게 문제다.

결국 썰매까지 공수해서 낚시 짐을 옮기기에 이르렀다.


'조잔케이'는 온천이 유명하다 보니 몇 번 와봤지만 근처에 이런 호수가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낚시 장소라는데, 역시 베테랑 낚시꾼들은 이른 아침부터 낚시를 즐기고 있다. 낚시도 낚시지만 호수 위다보니 내린 눈이 고스란히 30센티 이상은 쌓였다. 눈밭 속을 그냥 걷기도 해도 풍경이 된다.


본격적으로 준비 시작. 낚시는 사전 준비가 많다. 일단 낚시 장소까지 차로 못 들어오기 때문에 많이 걸어야 한다. 겨우 도착했나 싶으면 실이 꼬이지 않았나 확인해줘야 하고 먹이도 부지런히 끼워줘야 한다. 빙어낚시는 그뿐만 아니라 얼음구멍도 뚫어줘야하고 텐트도 쳐야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지친다. 어험, 뭐든 쉽게 되는 건 없는 법. 빙어낚시에 제대로 빠진 남편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회심의 장비로 구멍을 만든다. 두 명이서 할 건데 왜 구멍을 세 개나 만드는지. 텐트까지 세우면 일단 준비 끝. 나 엄청 투덜대면서도 은근 텐트 치기 신공이다.


이제 낚싯대 좀 잡아볼까 하는데, 남편이 준비한 회심의 장비가 또 등장한다. 물고기 탐지기란다. 구멍을 세 개 뚫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탐지기 상으론 빙어들이 엄청 많은데?! 이거 오늘도 양손 무거워지는 거 아니야. 한껏 기대감이 부풀어 오른다. 회심의 장비 하이라이트는 빙어낚시 전용 낚싯대다. 무슨 장인인지 하는 사람이 고안했다나. 아주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준단다.


회심의 장비 쓰리 콤보라면 결과가 무척이나 기대되는데... 좀처럼 안 잡힌다. 낚시에 관해 매우 단순한 나는 잡히면 재밌고 안 잡히면 질린다. 에잇, 잡히지도 않는데 안 해 안 해. 근데 남편은 안 잡혀도 몇 시간은 저러고 있다. 낚시는 잡히고 안 잡히고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 물고기들이 어떤 장소를 더 좋아할까, 어디에 모여있을까, 이런 걸 알아보고 직접 실행해보면서 가설을 확인하는 게 재밌다나. 그래, 뭐든 결과보단 과정이 중요한 거지. 근데 안 잡히니까 가뜩이나 추운데 더 추워진다(마음이). 이런 곳은 사실 컵라면 먹는 재미로 오는 거지. 인생 뭐 있어. 다 먹으려고 하는 거지. 하며 당당히 낚시는 남편한테 다 맡기고 기승전 컵라면으로 빙어낚시를 마무리했다.

겨울은 길다. 고로 즐겨야 한다.(ft. 맛있는 거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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