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카와에는 '동물원' 말고도 유명한 것이 있다. 바로 가구이다. 삼림이 풍부한 홋카이도의 특색을 살려 아사히카와에선 오래전부터 가구와 목제품을 만드는 회사들이 많다. 가구 생산지로는 홋카이도 내에서 1위이다. 아사히카와의 가구는 목재의 뛰어난 질뿐만 아니라 디자인성을 가미하여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1990년부터는 3년에 한 번씩 '국제 가구 디자인 페어'를 개최하고 있다. 대량 생산보다는 질 좋은 목재로 정성껏 만드는 장인 정신과 뛰어난 디자인성으로 고급 가구라는 브랜드화에 성공하였다.
아사히카와의 가구에는 특이하게도 '아사히카와 가구 제작 장인 헌장'이라는 게 있다.
1. 사람이 기뻐할 만한 가구를 만든다.
2. 나무의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3. 고품질의 가구를 필요한 만큼만 만든다.
4. 수리하여 지속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한다.
5. 차세대 가구 제작 장인을 육성한다.
그만큼 본인들이 만드는 가구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이 강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성껏 만든 물건을 소중히 하고자 해서일까, 아사히카와에는 가구뿐만 아니라 앤티크나 골동 가게들도 많다. 아사히카와 시내를 중심으로 산책 삼아 앤티크 숍을 둘러봤다.
1. 앤티크 숍 레트로(アンティークショップ歴都路)
'歷都路'라는 가게 이름에서 어딘지 모르게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다. 한자의 일본식 발음을 따서 '레트로'라고 조합한 점에서 가게 주인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책장부터 수납장, 의자, 테이블 등등 다양한 가구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조명이 눈에 띈다. 알고 보니 조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회사에서 사진 촬영용으로 사용했던 조명을 저렴하게 판매한다고 한다. 촬영용으로 한번 사용했던 거라서 거의 새 것과 다름없는데도 정가보다 20프로나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붙임성 좋은 주인아저씨는 가구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정성껏 설명해주셨다. 가구들의 지나온 자취를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앤티크 숍만의 매력인 것 같다.
2. soften GARAGE
앤티크 가구를 자주 보러 다니다 보면 가게에 모인 가구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뾰족했을 모서리가 다 닳을 정도로 말 그대로 '오래된' 가구가 있는가 하면, 세월 속에서 짙어진 원목의 색마저도 디자인의 일부인 마냥 멋스럽고 고급진 가구들도 있다.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느냐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가게는 후자에 속한다. 가게 안이 넓진 않지만, 앤티크 가구들과 함께 다양한 식물과 작은 소품들로 구석구석을 꾸며놓았다. 가게 주인이 가구 하나하나를 고심해서 골라 모은 게 짐작된다. 전체적으로 톤을 맞춘 가구들을 모아둬서 그런지, 차분한 가게 분위기가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한 듯한 느낌을 준다.
3. Area23
가구는 많지 않지만, 독특하게 철을 직접 재단하여 수납 걸이나 조명 기구 등의 인테리어 소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가게이다. 이 가게의 재밌는 점은 차가운 이미지를 주는 철제 소품과는 상반되게 따뜻한 인상을 주는 양초를 함께 판매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철제 소품과 양초 모두 가게 주인이 직접 만든다.
그 밖에도 빈티지 잡화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물건과 만났다. 여느 앤티크 숍에나 있는 파이어킹. 그런데 우리 집에서 어릴 때 쓰던 컵과 완전히 똑같은 디자인의 파이어킹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여러 군데서 파이어킹 식기를 봐왔지만 우리 집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컵은 처음 봤다. 마치 헤어진 친구라도 만난 마냥 너무 기쁜 나머지 한동안 이 컵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마치 이 컵과 만나기 위해 오늘 하루 앤티크 숍을 산책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 컵에 강하게 끌렸다. 결국 컵을 사기로 했다. 가게 주인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 컵과의 인연을 스스로 소개하면서 이 컵과 만나게 해준 가게 주인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담겨있던 컵이었기 때문에 떨어져 지내는 가족들에게도 바로 자랑을 했다. 별거 아닌 컵인데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한국에 있는 가족과 삿포로에 있는 나를 떠올려 봤다. 새삼 물건은 과거와 지금,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가구나 물건을 만나다 보면 이곳에 오기까지 어떤 사람이 썼던 물건일까, 어디서 왔을까 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샘솟는다. 누군지 모를 이의 감정과 추억들이 이 물건들에 겹겹이 쌓여 왔을 거란 생각을 하다 보면 왠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군가가 소중하게 써 왔을 물건에 우리의 흔적도 얹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