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메지마는 단순히 에메랄드빛 바다로 둘러싸인 휴양지가 아니라, 오랜 역사가 남아 있는 땅이다. 오키나와는 누구나 잘 알듯이 일본을 이루는 큰 섬 중 하나지만 애초부터 일본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 본토와는 다른 독자적인 역사의 시간이 흘러왔고, 12~15세기의 구스크 시대와 류큐 왕조 시대를 거쳐 일본으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일본 본토와는 다른 문화가 꽃 피었다.
구메지마에는 구스크 시대의 성 터 중 하나인 '우에구스크성 터'가 남아있다. 오키나와 본토에서도 구스크성 터를 볼 수 있는데, 우에구스크성 터는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구메지마 섬 전체를 내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날씨가 좋을 때는 오키나와 본토까지 보인다고 한다.
위치가 높은 만큼, 걸어서 갈 수 없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했다. 렌털 스쿠터를 이용할까 했으나, 열사병의 후유증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섬사람 특유의 친절함으로 구메지마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택시 아저씨 덕분에 지루할 틈 없었다.
말이 필요 없다. 바다와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몇 백 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벽 너머에는 일본 자위대 시설과 미군 시설이 자리 잡고 있다. 오키나와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일본의 총알받이가 되었던 땅으로, 패전 이후에는 27년간 미국의 통치하에 있었다. 여전히 미군의 그늘 아래 놓여 있는 오키나와. 수백 년 전의 역사 바로 옆에는 현재의 역사가 나란히 흘러가고 있다.
한동안 푸른 섬과 바다에 마음을 맡겨 놓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성 터를 내려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외지인 둘이 서있으니 지나가던 섬사람이 차를 멈춰 세우고는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본다. 친절함이 너무나도 고마웠지만 마침 버스가 올 시간이 돼서 아쉽게 거절했다. 하지만 덕분에 붉은 석양만큼 우리의 마음도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