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하는 길 과일 가게에 들렀다. 예정에 없던 방문. 원래대로라면 역 앞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귀가했을 텐데 왜인지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귀에 꽂혀 있던 에어팟을 빼고 사뿐 사뿐 걸었다. 줄곧 거세게 불던 바람도 마침 잠잠해졌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귀갓길. 집에 가는 길에 저녁거리를 사갈지 고민하는데 과일가게가 나타났다. ‘천혜향 친구 카라향’이란 문구가 적힌 박스 안에 새로 도착한 카라향들이 수북히 쌓이는 중이었다. 열 개 만원. 썩기 전에 다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 같았는데, 어느새 내 손은 가게 안에 비치된 노란 비닐봉지를 얻어 건강하게 익은 카라향을 신중하게 담고 있다. 노란 비닐봉지를 짤랑대며 집으로 향한다. 빠른 길로 걷다가 방향을 틀어 조금 돌아가지만 작은 공원을 가로질러야 하는 길로 향한다. 좋아하는 길이다.
공원 앞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 사람 두 사람 함께 멈추어선 사람들이 늘어간다. 내 손에 들린 것과 같은 노란 비닐봉지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봉지 안이 희미하게 들여다보인다. 내 앞을 가로질러 걷는 아주머니의 노란 비닐봉지에는 빨간 사과가 들어있다. 먹음직스럽다. 또 다른 아저씨의 비닐봉지에는 저녁거리가 들었다. 문득 이 광경이 정겹고 또 진정으로 이 동네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6년째 여기 살고 있는 거면 이 동네 사람 맞긴 한데… 그러고 보니 이 동네가 나의 거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것도 같다. 같은 아파트에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으며 이 동네에 알고 지내는 이웃은 미술 선생님과 PT 선생님뿐이다. 그나마 가끔 인사하던 옆 집 가족은 몇 달 전 이사했고 모르긴 몰라도 내가 이 아파트를 떠날 때까지 옆집은 빈집일 것이다. 어쩐지 기분이 조금 괴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