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인간. 내 가치는 내가 매긴다

외부 인정을 받으면 기분은 좋아지지만, 우리 영혼까지 채워주지 않는다

by 수인살롱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마다 매년 반복되는 것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인사평가다. 2025년 인사평가 결과가 오늘 나왔다. 아침 8시,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팀장이 조용히 회의실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업무 수첩을 챙겨 엉거주춤 회의실로 들어갔다. 업무 지시가 있나, 내가 놓친 실수가 있었나,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특별히 떠오르는 이슈는 없었다. 자리에 앉자 팀장은 “아시겠지만…”이라는 말로 서두를 뗐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뭘 안다는 걸까. 곧이어 “인사고과 결과가 나왔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 순간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표정 관리가 필요한 타이밍이라 나도 따라 억지 웃음을 지었다. “작년 경영진단 이슈 때문에 좋은 결과는 아닙니다. 그래도 나름 선방은 했습니다.” 길었던 말의 결론은 명확했다. 나는 다시 B급 인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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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단 이슈가 있었던 직원들은 평가 결과를 2등급 하향 조정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게 정확한 팩트인지, 아니면 알량한 위로용 립서비스인지는 알 수 없다. 사실이라고 치면 역으로 계산이 된다. 원래는 A를 받을 수 있었는데 B를 받은 걸까. 이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C가 아니라 B를 받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A를 받을 수 있었는데 B를 받았으니 억울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만약 B+였다면 조금은 덜 아팠을까. 평가는 단순한 숫자와 알파벳으로 표기되지만 내 마음은 단순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매를 맞으면 아플 걸 알고 있어도 매를 맞으면 역시 아프다. 경영진단 이슈 때문에 올해 인사고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이미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낮은 평가를 받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지는 않는다. 여전히 인정하기 싫고, 기분이 나쁘다. 더 황당한 건 B등급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 스스로 조금은 안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C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 안도감이 나를 더 화나게 했다. 이제는 나 스스로도 내가 B급이라는 평가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외부의 평가를 별다른 저항 없이 순순히 수용하고 있는 내 모습이 싫었다. 이미 나온 결과는 바꿀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 쉽게 젖어 있는 나 자신이 또 싫었다. 화가 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상태, 이 무력한 성냄 앞에서 허탈한 헛웃음만 나왔다.


마침 지난 주말부터 제이미 컨 리마의 『나의 가치』를 읽고 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다. 외부의 인정을 받으면 기분은 좋아지지만, 그 인정이 우리의 영혼까지 채워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충분하지 않다고 믿을 때, 관심은 사랑처럼 보이고 외적 중요성은 성공처럼 보이며 인정받는 것은 가치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외부의 관심과 평가가 있어야만 내가 존중받고 가치 있다고 느끼는 모습은 어리석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충분하다고 믿지 못했기 때문에 타인의 반응과 평가로 나를 재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존재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오늘 받은 인사평가등급이 내 전부는 아니다. 스스로를 더 믿고, 더 사랑하며 살아가자. 적어도 나만큼은 나를 B급 인간으로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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