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쓰는 단계
매주 목요일 밤 9시에는 문장 수업이 있다. 챙겨 들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늘 성실하진 못하다. 듣다 말다 한다. 그래도 수업을 듣고 나면 글쓰기에 분명 도움이 된다.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기술만을 가르치는 수업은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함께 배운다.
오늘은 유난히 졸리고 몸도 무거워서 수업을 빼먹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럼에도 접속을 했다. 화면에 비친 내 얼굴은 어쩐지 뿔뚱했다. 억지로 잠을 참아가며 참여했는데, 이상하게도 수업을 들을수록 점점 집중하게 된다. 이게 문장 수업이 가진 매력이다.
수업의 앞부분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글을 샘플로 삼아 함께 퇴고를 한다. 글을 짧게 쓰는 법, 육하원칙에 맞게 정리하는 법 같은 실질적인 팁을 배운다. 그리고 수업의 마지막, 약 5분간 미니 특강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간이 더 좋다. 삶을 대하는 태도, 작가로서 가져야 할 자세처럼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메시지를 건네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참아야 할 일이 많은 세상이지만, 참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반드시 매일 하라”는 말이 유난히 마음에 남았다. 그럼 나에게는 무엇이 참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은데 참고 버티는 일도 아니다. 반대로 하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일도 아니다.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은 순전히 나의 자유의지로 나를 드러내는 시간이고, 동시에 나를 회복시키는 도구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 글을 쓰다 보면 자꾸 멈칫멈칫 주저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완전히 내 이야기를 드러내지 못하는 내가 과연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지 의구심이 생긴다.
오늘 수업에서 샘플로 올라온 한 작가의 글도 그랬다. 글쓴이의 아픔과 감정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으로 쓰여진 글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그 글의 작가도 나처럼 글 속에서 솔직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갈등의 상황이나 아픔의 이야기는 끝내 드러나지 않았다.
나 역시 일기장에서도 완벽하게 솔직하지 못하다. 밝히기 어려운 이름은 이니셜로 쓴다. 말하기 곤란한 감정은 ‘그 사람’, ‘그 일’ 같은 지시대명사 뒤에 숨긴다. 정확히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것이다. 왜일까. 글 속에 비칠 나의 식견이 너무 좁아 보일까 봐. 내가 겪은 아픔이 초라해 보일까 봐. 아픔을 세상 밖으로 꺼내면 한 번 더 그 상처와 부딪혀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뱅글뱅글 겉도는 문장을 쓴다.
솔직함을 흉내 낸 정직함, 고백처럼 보이지만 끝까지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글. 그런데 오늘 문장 수업에서 들은 이 말이 오래 남는다. “초고를 쓸 때는 시원하게 드러내라. 퇴고 때 수정하면 된다.” ‘솔직하지 못한 내가 글을 써도 되느냐’가 아니라, ‘솔직해질 준비가 덜 된 내가 어디까지 쓸 수 있느냐’가 관건 인 것 같다. 모든 상처를 다 까발릴 수 없다고 해서 글을 쓸 자격이 없는 건 아닐 것이다.
나는 아직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지 못한다고 솔직하게 쓰는 단계에 서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