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어서 봤지만 눈물은 안났다
슬픈 영화가 보고 싶었다. 영화를 핑계 삼아 주인공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고, 내 마음 어딘가에 쌓여 있던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들을 꺼내 보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눈물샘을 자극해 한바탕 울어버리고 싶었다.
지난 연말 개봉한 영화 〈만약에 우리〉가 슬픈 멜로라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났다. 지금도 꽤 흥행 중이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최소한 실패는 아닐 거라는 기대를 안고 극장에 갔다. OTT에 익숙해진 탓에 극장에 온 게 얼마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영화관 로비는 썰렁했고 빈좌석이 많았다. 예약 없이도 충분했다. 영화에는 역시 팝콘과 콜라다. 달콤한 팝콘과 콜라를 들고 리클라이너 좌석에 몸을 기대자, 영화 보기 딱 좋은 자세가 완성됐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구교환과 문가영이 주연을 맡은 멜로 영화다. 가난하지만 사랑에 진심이었던 20대 청춘 남녀 은호와 정원의 이야기다. 현실의 벽 앞에서 결국 이별을 선택한 두 사람이 10년 후 우연히 재회하며 “만약에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다면?”이 이 영화의 주된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선택의 이야기다. 한순간의 선택이 삶을 바꿔 놓는 과정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두 배우를 보니 내 20대가 떠올랐다. 기억은 참 영리하다. 어렵고 좌충우돌했던 시간조차 시간이 지나면 미화된다. 애써 나쁜 기억을 꺼내지 않으려는 마음 덕분일지도 모른다.내 20대도 내 기억속에서는 ‘아름다운 시절’이 되어 있었다.
은호와 정은 이별을 선택한 덕분에 현실적으로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 각자 원하는 직업에서 성공했고, 반지하 방을 벗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그 선택이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과거의 선택이 달랐다면 지금은 어땠을지, 그 질문은 누구나 한 번쯤 되돌아보게 만든다.
나 역시 지금의 직장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최종 합격 후 첫 출근 날이 다른 회사의 최종 면접일과 겹쳤다. 그때 출근 대신 면접을 선택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더 나았을지, 더 힘들었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을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현재의 삶이 불만족스러워서라기보다, 경험해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에 가깝다.
결혼과 출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내 삶은 어땠을까. 20대의 나는 그 선택이 인생에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미칠 줄 몰랐다. 사랑하니까, 보고 싶으니까, 남들도 다 하니까 그렇게 선택했다. 깊은 고민이나 충분한 준비 없이 말이다. 그렇게 철없는 어른이 되었다. 물론 결혼을 하지 않았어도 철없는 어른이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영화 속 은호와 정원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은호는 빨리 성공해 정원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고, 정원은 그런 은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서로를 위해 꿈을 미루며 버텼지만, 그 시간을 견디기에는 둘 다 너무 어렸다. 결국 사랑은 남았지만, 함께할 힘은 남지 않았다.
나 역시 기다리는 데 서툰 사람이다. 그래서 더 이상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이라는 가정법을 남기지 않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 조금 더 집중하며 살고 싶다.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기보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만약에를 줄이기 위해, 오늘을 더 충실히 진심을 다해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