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앞두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에 쫓기던 오후, 진동음이 울렸다. 핸드폰 화면에 뜬 딸 아이 이름. 아무리 바빠도 전화를 받게 된다. 혹시 무슨 일은 아닐까 싶은 마음 때문이다. 다급하게 “왜?”라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아이는 내가 바쁘다는 걸 눈치챘는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엄마, 나 지금 다이소인데 뭐 필요한 거 없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긴장이 풀리며 피식 웃음이 났다. 아이들이 어릴 적, 내가 늘 하던 말이었다. “엄마 마트 가는데 필요한 거 없어?” 그 말이 이제는 아이들의 입에서 나와 나를 향한다. 그것도 크고 대단한 물건이 있는 곳이 아니라, 몇 천 원이면 온갖 생활용품을 살 수 있는 다이소에서 말이다. 용돈이 넉넉하지도 않을 텐데, 엄마를 떠올리며 전화를 걸어온 그 마음이 귀엽고 고마웠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 해주고 싶었던 아이의 마음이 괜히 식어버릴까 봐 순간적으로 때밀이 타올 하나를 사달라고 했다. “응, 알았어.” 하고 전화를 끊는 아이의 목소리가 유난히 밝고 맑게 귀에 남았다.
여행지에 가면 괜히 집에 있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 작은 기념품 하나라도 사 오게 되는 마음이 있다.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함께 떠나지 못한 사람을 마음속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 시절 수학여행에서 사 오던 작은 기념품들도 그랬다. 솔직히 말하면 실용적이지도 않고, 잠깐 장식장에 올려두었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흔히 말하는 예쁜 쓰레기에 가까운 물건들이었다. 하지만 선물을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어떤 게 좋을지 고민했을 아이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흔적이었다. 쓸모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선물들,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보내는 애정의 방식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모녀지간이라 “사랑해” 같은 말은 금기어 처럼 어려워한다. 대신 이렇게, 다이소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처럼 소소한 방식으로 마음을 건넨다. 사랑은 꼭 크고 대단한 말이나 이벤트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다. 바쁜 하루 중에 떠올려준 마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질문 하나, 필요한 게 없냐고 묻는 짧은 전화 속에 사랑은 충분히 담긴다. 보이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그런 마음들이 쌓여 관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건넨 작은 배려 하나가, 어쩌면 그 사람의 하루를 오래도록 데워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