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by 수인살롱

소속 조직의 임원과 나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하루에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사무실 안에서 책상과 책상사이의 물리적인 거리는 몇 미터에 불과하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몇 킬로미터쯤 되는 것 같다. 직급 차이도 있고, 원래 말수가 적고 조용한 스타일이라고만 생각했다. 나 역시 굳이 애써서 먼저 말을 붙일 이유도 없었다.

업무적으로는 카리스마 있고 추진력이 좋다는 이야기만 전해 들었을 뿐, 직접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다. 간혹 이메일 수신인과 참조인에 이름이 섞여 메일이 오가고, 전결권한에 따라 전자결재를 상신하면 승인을 받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아주 우연히 그 임원의 개인적인 사정을 알게 되었다. 약 3년 전 사별을 했고, 홀로 고3 아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업무적으로는 당당하고 단단해 보였던 모습과 달리, 개인적으로 무척 조용하고 때로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아침 출근이 다른 임원들보다 늦고, 퇴근도 정시에 하는 편이라 규칙적인 생활을 중시하는 가정적인 성향이라고 짐작했다. 그것은 완전히 빗나간 해석이었다. 고3 아들의 아침을 직접 챙기고 나서 출근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그 임원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보다는 일, 관계보다는 성과를 중시하는 냉정한 리더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무심하고 매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를 듣고 나니, 힘든 일을 겪은 이후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을 견디기 위해 오히려 일에 더 몰두했을 수도 있고, 일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 역시 나 혼자만의 해석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후, 그를 바라보는 내 시선과 해석은달라졌다.

차갑게만 보이던 사람에게서 인간적인 나약함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이 생겼다. 심리적인 거리가 조금 줄어든 것 같다.

티베트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화장실 없는 집은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이고 단단해 보여도, 어느 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정 하나쯤은 있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배웠다. 사람을 겉모습과 역할로만 판단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사정을 상상해 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따뜻해질 수 있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각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생각보다 훨씬 닮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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