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알람 없이 눈을 떴다.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이불 속에서 느릿하게 몸을 뒤척이며 정신을 깨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이렇게 서두를 필요도, 누군가의 호출에 반응할 필요도 없는 아침. 특별한 사건이 없어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이 시간이 바로 내가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다.
주방에서 이것저것 정리하며 움직이는데, 어디선가 희미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딸아이가 입으로 내는 소리다. 바람 새듯 가볍게 흘러나오는 소리에 귀가 간질거린다. 이제는 좀 컸다고 사소한 이야기를 나에게 다 늘어놓지 않지만, 저 소리는 분명 기분이 좋다는 신호다.
휘파람 소리를 들으니 지난주 딸아이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얼마 전까지는 매사 불안하고 불행했다고 했다. 이유를 자세히 묻지는 않았다. 아픈 이야기를 굳이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꽤 행복하다고 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궁금해 물었다.
아랫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하다 실수로 찝혀서 속눈썹 세 가닥이 빠졌다고 한다. 여리고 예민한 부위라 따갑고 아파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단다.
‘내가 최근에 이렇게 아프고 슬퍼서 눈물이 났던 적이 있었나? 속눈썹 세 개 따위가 나를 아프게 할 정도라니..."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고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최근의 나는 그만큼 무탈했고,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었다는 걸. 속눈썹 세 가닥이 알려준 행복감과 안정감이라니. 그 이야기에 나도 딸과 함께 허허허 웃었다.
생각해보면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사람마다 참 다르다. 누군가는 큰 성취나 분명한 보상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는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내게는 알람 없는 토요일 아침이 그렇고, 딸에게는 속눈썹 세 가닥이 빠질 만큼 아파본 순간이 그랬다. 행복은 늘 대단한 사건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평온한 상태에 놓여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 문득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
딸아이가 지금 행복하다고 하니 내 마음도 가벼웠다. 반면 그 이전의 불안과 불행을 나는 충분히 살피지 못했던 건 아닐까, 부모로서 반성도 해본다. 나 역시 여전히 불안이 많은 어른이라 내 마음 하나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아이의 불안까지 보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다고, 안정적이라고 말해주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가.
이제 더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의 앞날은 분명 밝다고.
엄마는 늘 곁에 있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네가 원하는 길로 앞으로, 앞으로 쭉쭉 뻗어나가도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