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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곧을 정 Mar 11. 2020

What if

내가 만약, 이별이 주는 미련의 가정법들.

내가 만약 준비가 된 상태에서 시작했더라면

내가 만약 지난 연애의 상처를 잘 치유했다면

내가 만약 연애가 갑질이 아닌 배려와 양보로 흘러가야 한다는 걸 알았더라면

내가 만약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내가 만약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다른 언행과 다른 사랑을 주었을까?


헤어 진지 3일째, 큰 미련은 없지만 나를 괴롭히는 이 가정법들.


20대 초반의 죽고 못 사는 헤어짐의 아픔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번 연애의 마침표는 나에게 전환점을 가져다준 시간 임은 분명하다.


두 사람 서로 흠 없는 온전한 반달일 때 만났을 때 비로소 온달이 될 수 있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 

나는 온전한 반달이지 못했던 상태로 시작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간 준비해 왔던 것들을 쏟아붓는 것 같다며 나에게 말을 했던 그.


그 말을 지금에서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것 같다.


누구를 만나면서 그 인연을 소중히 하며 만나야 하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들과

스스로 연애의 가치관이 확립이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할 만큼의 인연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 하나로 마냥 기다리기만 했다.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며 콧대 높은 행세를 했지만, 

정작 원하는 인연을 담을 나 자신의 그릇은 준비는 하지 않았다.


내가 깨져있으면 상대방도 가운데에 금이 생기고, 

내가 아무리 상대방 달이 깨진 걸 매우려 노력해도 

상대방의 깨진 달은 상대방 만이 채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깨져있는 상태로 

언젠간 온전한 반달이 나를 매워 준다고 믿고 있었나 보다.

나 자신도 나를 못 믿은 채, 못 품은 채, 못 보듬어 준채..


그만큼의 인연을 바라는 만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성숙한 사람이지 못했다.


연애 초반, 많은 것들을 쏟아붓는 그에게 나는 카톡 소리 대신 

연락불통을 선물해 주었고

알콩달콩 대신 무관심을 선물해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원래 그런 스타일 이라면서, 

혹은 전 연인에게 받은 나쁜 사랑의 방식이 아직 남아 있다는 핑계를 내세우며 


생각해보면 항상 그 자리에서 내가 좀 더 변할 때까지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뀌고 싶은 사람이었고, 그 사람을 통해 내가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 사람은 생각해보니 힘이 들었겠다.


항상 내가 갑이 되어야 했고, 내가 더 많이 받아야 했다.

양보를 하면서 만나야 한다 라는 인식도 하기 싫었고 하지 않았다.

같이 맞춰나가야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이번에서야 처음 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지금 이별이 슬픈 것보다

그 순간 준비되지 못한 나의 그 미성숙했던 모습들이 슬프다.

그 모습들로 인해 그 순간을 잡지 못한 모습들이 미련을 가지게 만든다.

What if I wasn't  immature...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사랑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 사실이 아직까지 풀지 못한 고민으로 남아있다.


그래도, 인연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사랑한다면, 계속 맞추고 만났을 것이라는 

엄마의 말. 


그래서 결론은 계속 what if를 넣어서 상상해보다가,

이렇게 성장해 나가는구나.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맞는 사람을 만나려면 이 옷도 입고 저 옷도 입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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