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황무지 속의 텍스트 매체 둘

by 가소로

오늘 글쓰기 마지막 수업이 있었다. 세명의 저널리스트를 초대해서 그들의 프로젝트에 대해서 듣고 대화를 나눴다. 다들 아주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명은 휘트니 리뷰(the Whitney Review)의 설립자, 나머지 두명은 뉴욕 건축 리뷰(New York Review of Architecture)의 편집자와 발행자였다. 휘트니며 뉴욕이며 하는 이름이 붙어있어 아주 거창하고 으리으리해 보이지만 실제로 규모는 아주 작은 매체들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 거창하고 으리으리해서 긴장이 됐다. 이 사람들은 활자는 죽고, 영상이 득세한 이 시대에 왜 - 그리고 어떻게 텍스트 매체를 창간할 생각을 하고 이만큼이나 발전시켜왔을까?


휘트니 맬롯은 이제 막 최초 발행을 마쳤고, 뉴욕 리뷰는 시작한지 약 4년정도 됐다고 한다. 지금은 1년에 6회, 30 - 40페이지 가량으로 발행되는 뉴욕 리뷰이지만 그 창간호는 11 x 17인치 종이의 앞 뒷장 해서 딱 2페이지였다. 11 x 17인치 종이라함은 우리나라로 치면 A4처럼 흔해 빠진, 다만 그보다는 좀 큰 미국의 흔한 종이규격이다. 그러니까 대략적으로 A3 종이 한장에 앞 뒤로 글자만 채워서 창간호를 발행했다고 보면 되겠다. 두 매체의 공통점은 사진을 싣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텍스트. 오로지 활자만 싣는다. 너무 멋지다. 돈이 안되는걸 하면 일단 멋있어 보이는건가.


그렇지만은 않다고 변호를 하고 싶다. 휘트니 리뷰의 발행자 휘트니는 이 프로젝트의 시작 배경에 대해서 '뭔가 채워져야 할 구멍'(a hole to be filled)을 언급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팬데믹이 닥친 뒤 고립된 생활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뭔가 텅 빈 자리를 발견했다는 얘기였다. 그게 텍스트에 대한 욕구였다. 실제로 그런 구멍이 있었다고 해도 큰 시각으로 보면 아주 작은 구멍 - 니치 마켓같은 규모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든 어떻든 휘트니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신이 아는 작가, 저널리스트들에게 글을 부탁하고, 발주하고, 또 개인적으로는 전혀 모르더라도 인상깊게 읽은 작가들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홍보를 시작하고 광고도 몇건 받았다. 그렇게 첫호가 나왔다.


뉴욕 리뷰는 달랑 종이 앞뒷장으로 시작한 뒤에 이제는 SVA(School of Visual Art)에 둥지를 틀고 학생들과 매주 세미나를 하기도 하고, 그레이엄 파운데이션의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들은 사진을 싣지 않는대신 뉴욕의 상징적인 쥐를 마스코트로 하는 일러스트를 다양하게 변주해서 싣는다. 그리고 그들의 프레젠테이션 장표에서 갑자기 우리나라 무료배포 잡지인 '교차로'가 튀어나왔다. 그들은 이 잡지에서 컬러 가이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교차로는 CMYK 네가지 색상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즉 프린트용 생상의 기본 요소가 되는 네가지 색상이다. Cyan, Magenta, Yellow, Key(Black)이다. 그들은 네가지 모두를 쓰는건 아니고 노란색 한가지만 사용해서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들었다.


나는 두 팀 모두에게 질문을 했다. 그들의 마케팅이며, 텍스트 매체의 생명력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답을 들었다. 나 말고도 여러 친구들이 이런질문을 던지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글쓰는 사람들, 글을 발행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늘 빠지지 않는 얘기는 꾸준함과 플랫폼이다. 꾸준함은 쓰는 일에 대한 꾸준함이고, 플랫폼은 쓴 글을 어떻게 배포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뉴욕 리뷰는 내년 1월쯤 LA판 리뷰를 새롭게 시도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원한다면 피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어떤 글을 쓰고싶은지, 그 글을 자신들의 매체에 싣고 싶다면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제안 메일을 달라는 것이었다. 피치, 그게 뭐든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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