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북악산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도가니탕을 먹었다. 제대로된 도가니탕을 먹은건 오늘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와룡 공원인지, 아마 맞을 것이다, 그쪽으로 내려와서 청와대 골목을 따라 걷다보니 30년 전통이라고 적힌 도가니탕 간판이 보였다. 예전에 북촌에 살때도 산에 다녀오는 길에 항상 보던 간판이었다. 오늘은 그 알루미늄 샤시로된 얄팍한 문을 좌측으로 열어젖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실은 들어가기 전에 네이버 맵에서 별점을 체크하고 난 뒤에 들어갔다. 앱에 젖히는 문구 치고는 좀 특별한 문장이 쓰여있었다. 소심한 미식가들이 혼자서 먹기좋은 도가니탕집? 정도의 문구였다. 소심하다는 형용사와 미식가라는 명사 두가지로 이미 내 마음은 기울었다.
미식가는 아닐지 몰라도 소심한건 어느정도 나에게 들어맞는 얘기다. 그러니가 그리 삐까뻔쩍하지 않고 적당히 소소한 규모의 가게가 좋다. 맛이 좋으면 더할나위없다. 그런곳이 잘 없어서 문제다. 이 도가니탕 집은 테이블이 딱 다섯개였고 메뉴는 딱 세개였다. 곰탕, 도가니탕, 수육 - 만원, 만오천원, 삼만오천원. 마치 등차수열도 아닌데 등차수열인 것 처럼 늘어서있는 가격의 배열. 그리고 곰탕과 수육 사이에 끼어있는 네글자짜리 메인메뉴. 여러가지로 단순 명료하면서도 오묘한 수학적 미를 풍기는 메뉴판이었다.
도가니탕은 시킨 뒤에 거의 오분만에 나왔는데 국물 한방울을 남기지 않고 비웠다. 내가 식사를 하는 테이블 왼편 정면에서는 주인 아주머니가 말없이 도가니를 큰 다라이 같은 용기에 담아 손질을 하고 계셨다. 서빙은 주인 아저씨의 몫이었다. 내 왼편 상단에는 윗층으로 이어지는 나무 다락 계단이 보였는데 그냥 밥이나 먹을 것이지 그 계단 위 공간에 호기심이 점점 자라났다. 그냥 밥이나 먹자, 아니다 한번 물어보자 - 구경해도 되는지 - 그 이전에 저 윗쪽도 테이블 공간인지 한번 물어보기나 하자. 그렇게 저렇게 망설이기를 몇분, 결국은 두분에게 저 윗쪽 공간을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그곳은 두분의 어머님이 주무시는 가정집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쓸데없는 질문에 대해 거듭 죄송함을 표했고, 두분은 웃으며 괜찮다고 답하셨다.
도가니탕을 먹으면서, 아니 도가니탕 집 알루미늄 문을 열어젖히던 순간부터 오늘의 글은 도가니탕에 대해 쓰리라고 마음 먹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서 땀을 씻어내고 밖에 나가서 글을 쓰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숙소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이 더위에 노트북 쇳덩이를 넣은 가방을 들쳐메고 나가기는 싫어서였다. 글은 집에서 쓰고 외출은 홀홀단신 가방없이 하고싶은 마음이 큰 하루다. 산에 오르는 길에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보니 그동안 스트레스가 꽤나 많이 누적된 모양이었다. 나지막하게 씩씩거리며 이따금씩 상스런 욕을 추임새처럼 내뱉는걸 보면 알 수 있다.
학교에서 낑낑대며 온갖 짐을 캐리어에 쑤셔넣으며 택시를 잡을때에는 무리도 이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건 분명히 잘못된 선택일 거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여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기 위해서도 그렇다. 어쩌면, 한국에 나오지 않았다면 아픈 몸을 어떻게든 이끌고 좀더 효율적으로 졸업 프로젝트 막바지 작업을 마무리 해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무리하다 싶은 일정으로라도 한국에 나와서 추천서를 써주신 교수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들 얼굴을 보고, 식사를 하고, 바닷가를 걷고, 물회 한그릇을 함께하고, 손을 잡고,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파스타를 만들어 드리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더없이 어정쩡한 타이밍의 귀국이고 휴식이지만 일반적인 시각은 일반적인 시각일 뿐이다. 내 입장에서, 멀리보는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갖는 일, 그게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이유의 시작이요 끝이었다. 일반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자. 일반적인 삶과는 좀 다르게 살고싶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일방적인 삶이 일반적인 삶의 반댓말처럼 들리진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은 일방적으로 내 시각을 관철하는게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