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ECE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거의 변태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MECE는 Mutually Exclusive, Collectively Exhaustive의 약자로, 집합을 토대로 논리를 구성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하나의 전체집합 X가 있고 그 부분집합이 A, B, C라고 하면, A B C 사이에 중복되는 원소가 없으면서 또한 A B C가 빠뜨리는 원소가 하나도 없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니까 논리적으로 철저하게 구성된 리서치를 위해서 꼭 필요한 기준으로 볼 수 있다.
이 기준을 내가 처음으로 접한건 어느 유명한 글로벌 컨설팅 회사가 펴낸 리서치 방법론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한때 그 책이 대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방법론이 마음에 들었다. 뭔가를 깔끔하게 미련없이 털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아직 뭔가 더 할게 있는것 같거나, 뭔지 몰라도 뭔가를 빠뜨린 것 같은 찝찝함을 싫어하는 성격 탓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나는 각종 기획안을 쓸때 뿐 아니라, 아이디어 회의를 할때, 나아가 대학원 포트폴리오 준비를 할때에도 그 방법론을 활용했다. 활용을 넘어서 내 사고방식을 구성하는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렇게 건축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구성한 목차가 시간, 공간, 이미지, 텍스트, 그리고 기능이었다. 총 다섯가지 항목이 그때 내가 바라보는 세계에 있어서는 MECE라는 조건을 깔끔하게 만족시키는 부분 집합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 브런치에 제출한 글 역시도 이 기준을 바탕으로 작성했었다. 다만 몇가지 편집이 있었던 부분이라면 이미지와 텍스트를 '기호'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묶고, 기능의 경우 다른 네가지와 층위를 맞추기 위해서 '사물'로 대체한 것이다. 기능은 추상적인 개념이고, 기능이 담기는 것은 사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 세계 전체를 사물, 기호, 시공간적 배경이라는 세가지 큰 범주로 포괄할 수 있게된다.
사물은 정확한 정의를 따르자면 생물을 포괄하지 않는 듯 하지만, 존재하는 대상을 포괄하기에 그보다 더 나은 개념을 찾을 수 없었다. 사물의 종류에 따라서 기능을 따지자면 얘기가 아주 복잡해진다. 사람이나 여타 생물의 기능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사람은 기능적인 존재일까? 바꿔말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닌가? 다른 생명체는 어떨까? 모든 생명은 어떤 기능을 타고나는 걸까? 이런 기능들은 미리 디자인되는걸까? 인간이 디자인하는 물건의 기능은 어떨까? 돌도끼처럼 기능은 발견되고 부여되는걸까 나이프처럼 디자인되고 연마되어 가공되는걸까?
기호는 사람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수단으로 시각적인 기호는 이미지로, 언어적인 기호는 텍스트로 볼 수 있다. 기호의 경우 사물과 달리 그 본체가 물질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물질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표현되지만 그 개념은 인간의 마음 속에 개념으로서 존재한다고 보는게 맞다. 공기중에 전달되는 소리나, 눈에 보이는 종이위의 연필 선으로, 혹은 스마트폰 스크린의 픽셀을 통해서 표현되지만 그 의미는 사람의 지성을 통해서 해석되고 이해된다. 그러니까 기호는 하나의 추상적인 의미의 체계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미는 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렇게 땅굴을 파고 한없이 들어갈 수 있는 범주가 기호다.
시간과 공간은 기호가 오고가고 사물이 존재하는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물리학적으로 텅빈 공간은 없고, 그저 질량을 가진 물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력장이 존재할 뿐이라고 본다면 또 공간이라는 말에는 어폐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봤을때 공간이 있고, 또 공간 속에서 시간이 흘러간다고 볼 수 있다. 시간에 대해서도 재미있는 태클을 걸어볼 수 있다. 시간은 공간에 귀속된 개념일까, 아니면 공간보다 우위에서 공간을 지배하는 개념일까? 바꿔말해, 공간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시간이라는건 별개로 흘러가는걸까, 아니면 공간상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시간이라는건 애초에 없는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걸까?
내 결론은 시간이 공간으로부터 파생되는 - 귀속되는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태초의 순간을 생각해봤을때, 시작도 끝도 없고, 따라서 그 어떠한 변화도 없는 우주를 가정한다면 시간이라는 개념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단 뭔가가 변화한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시간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았다. 영원히 아무것도 어떻게도 변하지 않는다면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제까지 변해온 추세를 바탕으로 우주 어딘가에서 시간을 측정한다고 하면 그건 모순이다. 시계가 움직여야 시간을 측정할텐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이미 가정했기 때문이다. 이 우주의 외부에 다른 누군가가 있어서 멈춰버린 우리의 우주를 바라본다면 또 모를 일이다.
내맘대로 생각한 개똥철학 같은것이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피직스에서 그 기반이 될만한 문구를 찾았었다. Time is measure of change 라는 문장이었는데, 시간을 변화의 측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시간은 어떤 대상의 변화를 전제하는 개념 - 대상의 변화로부터 파생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정리하자면, 애초에 MECE의 기준으로 구성한 시간, 공간, 이미지, 텍스트, 기능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이 다섯가지 카테고리는 더 상위의 항목들로 대체됐다. 기호, 사물, 시공간이라는 세가지 범주였다. 그런데 졸업 프로젝트를 마친 지금에 와서는 또 한번 항목 구성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나아가 MECE라는 기준 역시도 이번에는 버려야 할 것 같다. 기호와 사물과 시공간이란게 현실적으로는 모두 엉키고 설킨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과거의 항목구성이 분석적으로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통합적으로, 관계 위주로 해보려는 생각이다.
모든것이 이미지라는 생각은 존 메이라는 건축가의 글 제목이다. 이미지는 곧 스크린이 구현하는 디지털 이미지들을 일컫는데, 이런 이미지는 이미지이기 전에 몇개의 컬러코드로 구성되는 데이터이고, 데이터는 곧 텍스트다. 존메이가 쓴 글을 읽을때는 그렇게 그럴싸해 보이던게 내가 내 문장으로 옮기고 보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다. 이렇게 이미지의 실체는 텍스트이지만 이 텍스트는 전통적인 언어로서의 텍스트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 차이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통해서 설명이 가능하다.
책에 인쇄되는 전통적인 텍스트는 좌에서 우로, 상단에서 하단으로 선형적인 질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시간 개념을 수반한다. 하지만 이미지의 픽셀을 구성하는 데이터로서의 텍스트는 그런 순차적인 시간과는 거리가 멀다. 픽셀정보를 담는 0에서 255까지의 R, G, B값의 조합으로 구성된 이 텍스트가 담고있는 질서는 수학적인 조합에 가깝다. 아...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여튼 이번에 써볼 글의 목차 구성은 상호 배타적, 종합 포괄적 따위의 분석적 기준보다 실질적인 관계 맥락을 기준으로 해보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관계 맥락을 기준으로 구성한 새로운 목차가 도대체 뭐냐?? 그건 다음 글에서 쓰기로 한다.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