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하자면 핏빛 미술관

by 가소로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무척이나 쌀쌀하다. 뭘 쓸지에 대한 생각없이 문장을 시작한건 오랜만이다. 아마도 미술관과 건축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 것 같다. 아침에 읽은 신문 기사가 그에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공립 도서관을 통하면 좋은글을 무료로 읽을 수 있어서 항상 뉴욕타임즈만 찾게된다. '미술관 방문이 도덕적 딜레마가 될때'라는 제목으로 올 2월 뉴욕타임즈에 실린 기사였다. 처음에 눈에 들어온건 짙은 갈색 도자기 같은걸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바라보는 어떤 백인 여성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눈을 사로잡은건 그 아래로 쓰인 사진 설명글이었다. "독일 훔볼트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던 베닌 왕국의 유물을 그 후신인 나이지리아에 반환하기로 했다." 베닌 왕국.


누구에게나 생소할게 분명한, 그리고 나 역시 그랬던 베닌 왕국을 처음 알게된건 대학원 건축 이론수업에서였다. History of Property - 사유지의 역사라는 수업이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기반이 되는 사유재산 제도의 역사를 돌아보는 한편 그 대안적인 시스템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봤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토지 공유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수업은 딱 집어 그런 사조나 이념을 공부하는 식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대신 친숙하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서 가정법과 상상력을 동원해 피부에 와닿는 공부를 했다. 예를들면, LA에서 생활하는 우리 일상을 쭉 돌아본 뒤 사유재산의 개념과 법적 보호망이 사라진다면 어떤 모습이 될지 토론해보는 식이었다. 살인적인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될테니 좋을거라거나, 반대로 노숙인들과 온통 뒤섞여 일대 혼란이 벌어질게 분명하다거나, 혹은 애초에 상상도 할 수 없다거나 하는 얘기들이었다.


이런 대화를 통해서 한가지 배운게 있다면 사적 소유의 대안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문자로 마르크스 MARX, 엥겔스 ENGELS 등등이 만들어냈다는 거대 이념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두세가구가 취미삼에 공동 경작하는 밭두렁 정도도 충분히 대안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오히려 그런 소규모 공동체가 더 설득력있는 대안이었다. 꼭 자본주의 체재를 뒤집어엎자고 들 일은 아니었다. 작은 시골 마을보단 좀 컸지만 베닌 왕국도 나이지리아 남부의 소규모의 성곽 도시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마을 사람들끼리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공동 소유관념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인근에 자리잡은 숲에 각종 자원이 풍부했는데 주변의 거주민 모두가 함께 사용하며 융통성 있게 관리되었다.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릿 하딘(Garrett Hardin)의 이론이 베닌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소유주가 불분명한 공유지였음에도 베닌의 숲은 폐허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이 침략하기 전까지는 이런 지역적 운영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잘 돌아가던 산림의 지속가능한 관리를 위해서라는게 침략의 명분이었다. 영국은 침략 후 베닌 왕국에 자본주의를 이식했다. 숲의 자원을 중앙에서 소유해 출입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현지에서 구할 수 없는 별보배고둥(cowry)이라는 어폐류 조개껍질을 중앙화폐로 통용시켰다. 이런 과정에서 오늘 읽은 신문 기사에 나온 도자기 등의 문화재 역시 대놓고 한무더기씩 영국으로 가져간 모양이었다.


흘러흘러 독일에 보관된 베닌 문화재는 반환이 된다지만, 영국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것들 - 베닌 뿐 아니라 약 800만점에 달하는 해외 약탈 문화재들은 반환 예정이 전무하다.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반대편에서, 여전히 현상 유지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도 근거는 있다. 대영박물관 같은 곳에서만 모든 인류의 역사적 문화적 성취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적 문화적 장관이 어느 작은 민족들의 희생(기사를 따르면 피 'bloodshed') 위에 자리잡아서는 안된다는게 이 기사의 논지였다. 노골적으로 말해보자. 대영 박물관에서 우리는 이름모를 주인의 피에 젖은 문화재를 보면서 미소짓고 떠들며 박물관에서 나간뒤의 저녁식사 메뉴를 생각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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