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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Oct 04. 2023

Seoul Review of Architecture

줄여서 SeRA

얼마전에 미국 건축 신문에 피치할 기회를 놓쳤다. 해외 학생 신분으로는 캠퍼스 외 불규칙적인 업무활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건축을 공부 중인 이곳 로스 앤젤레스 주변의 주요 건축 이슈를 기고할 수도 있는 기회였는데 글쓰기와 건축 모두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번 실패가 꽤 쓰렸다. 그래서 우리나라 건축에 대해서 먼저 쓰기 시작하기로 했다. 여기에서 공부하면서 알게된 건축 관련 미디어에 자극받아 마음먹게된 일이다. 건축에 대한 글쓰기 수업 시간에 NYRA (New York Reveiw of Architecture) 편집자와 운영자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들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고, 이제 곧 LARA (Los Angeles Review of Architecture)를 론칭할 예정이라고 했다. 내년 1월 예정이다. 


'서울 건축 리뷰'는 아직 아무도 만들지 않았다. 아무리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영문도 국문도 마찬가지다. 놀라운 일이다. 권위있는 미디어나 기관은 대체로 이렇게 무미건조하지만 그만큼 단순명료한 이름을 앞서서 차지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일반 명사처럼 들리는 매거진이 없다는건 말이 안된다. 내가 아는 주요 건축리뷰지는 공간, 그리고 유현준 교수님처럼 몇몇 유명 건축가가 만드는 유튜브나 책, 블로그가 전부다. 우리나라에 건축 비평가라는 직업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먹고 살기 힘든 직업은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허튼소리 할 시간에 벽돌 한장이라도 더 쌓아올려야 욕안먹던 20세기 사회상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건지도 '모른다'는 어미가 말해주듯, 해보기 전에는 역시 모르는 일이다. 지금은 21세기고 한국도 꽤 성장했다. 그럴싸한 비관론으로 싹을 잘라버리기 시작하면 남아날 싹이 전무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둘다 모르는 일, 싹을 자르기보다 먹고 살기 힘들어보이는 일이라도 시도해보는 편이 나을게 분명하다. 


NYRA나 LARA는 나름 공을 들여 론칭을 준비하고 온 오프라인으로 발행하는 식이지만, 꼭 그런 방식을 따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게 할 상황이 못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호까지 지속될지 알수없는 이 매거진을 통해서 꼭 이루고 싶은 바가 한가지 있다. 권위가 아닌 관찰과 근거에 기반한 비평 문화를 조성하는데 좁쌀 한톨 정도의 기여를 해내는 것이다. 딱 그만큼이면 성공이다. 좀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 국내에서 가장 권위있는 '공간' 매거진 이외에 또 하나의 영문 발행 건축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주 멀리 멀리 본다면 말이다. 


학교 도서관에 가면 각종 건축 및 예술관련 잡지들이 구비되어 있다. 그 중에서 한국 발행 잡지로는 '공간'이 유일하게 영문판으로 소장되어 있는걸 봤다. 세계 건축의 흐름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자리는 미비하지만, 그런 국제적 위상 따위와 별개로 사람들의 건축 보는 눈이 후질거란 편견은 오판일 수 있고, 오판이기를 바라고, 오판으로 만들고 싶다. 서울의 건축적인 위상이 높아진다면야 여러가지로 좋겠지만 그런건 나중 일이라고 생각한다. 위상은 타인의 눈에 그럴싸해 보인다는 의미고, 따라서 당사자로서 세계를 바라보는 본질적 시선에 뒤따르는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위상이 어찌되건 일단 거리에 멈춰서 건물들을 쳐다보는 - 직시하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 


건축은 생활의 배경을 만드는 일이다보니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묻혀 시선을 받지 못할때가 많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은 배경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면 배경에 따라서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의 종류도 바뀌고 성격도 바뀐다. 배경은 사건을 결정하지 않지만 사건의 조건을 제시한다. 어떤 배경으로 인해 특정 사건이 반드시 벌어지는 경우는 없지만, 어떤 배경이 부제할 경우 특정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지는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제 서울도, 대한민국도, 국제 정세에 의해 주어진 배경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쥐들의 경주처럼 물고뜯고 고군분투하는 수준은 넘어설 때가 됐다. 배경 속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 배경이 절대적인건 아니다. 배경은 배경 속에 존재하는 누군가가 만든 것이고, 배경속에 존재하는한 누구든 만들어갈 수 있다. 시선의 힘으로 말이다.


건축물을 향한 시선만큼 글에 대한 시선 역시도 한문단을 할애해 두둔할 만큼 위기에 처한 매체다. 글은 건축만큼, 혹은 건축보다 더 비인기 매체로 전락했다. 둘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듯 하다. 둘 모두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상 그 속에 뛰어들면 쪽박이 대세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눈물겨운 분석이다. 책방과 책에 대한 최근 트렌드는 활자 그 자체보다는 책방이라는 재밌는 장소를 방문하거나 책이라는 오브제를 구경하는 전시장 나들이로서의 성격이 더 짙다. 이 시대에 활자는 우스개소리처럼 말하던 검은건 글, 흰건 종이라는 식의 시각적 전시물에 가깝다. 하지만 글이 아무리 비인기 매체라 해도, 우리는 항상 글을 쓰고 읽는다. 카카오톡에서 시작해서 각종 소셜 미디어 역시 모두 글이라면 글이다. 그 길이가 짧아지고 성격이 바뀐것 뿐이다. 


NYRA에서 배울점이 있다면 글이 죽어가고 비평도 죽어가는 시대 속에서도 활자를 매개로한 비평 매체를 시작했다는 점이고, 나아가 최근 트렌드를 반영해 짧은 단문 형식의 리뷰 역시 제공한다는 점이다. 읽히지 않는 글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읽히는 리뷰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들의 생각에 공감을 넘어 적극 지지하는 바이다. 그래서 SeRA (Seoul Review of Architecture) 역시 단문 형식을 수용하기로, 아니 200-400자 정도의 짧은 리뷰를 중심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누구나 어떤 건축물이나 공간을 스스로의 눈으로 바라본 '시선'에 근거해 작성한 글이라면 환영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이 건물은 너무 후져보인다'는 식의 비평은 몰가치하다. 하지만 '이 건물은 네모 반듯해서 좀 지겹다'는 비평은 좋은 비평이다. 그 외에 복잡 다단한 이론적인 기준 따위는 세우지 않으려고 한다. 건축문화는 어떻게 형성되는걸까. 클라이언트부터 시작해 다양한 관련인이 개입되는 건축의 성격탓에 건축 전문가의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구도에서, '보통의 시선'만큼 강력한 동력은 없다. 건축물을 빤히 쳐다보는 시선, 건축에 대한 글을 1-2분 남짓이라도 조용히 쳐다보는 시선이면 건축'계'를 움직이기에 충분히 강력한 힘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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