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끊은지 일주일째다. 한번씩 습관적으로 유튜브 앱을 누르고 홈화면을 스캔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뭔지모를 금단 증상이 있는것도 같다. 하지만 이번주엔 워낙에 복합적으로 다양한 변화가 많았기 때문에 단순히 유튜브 금단증상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번주에 OMA라는 좋은 건축 스튜디오의 채용공고가 떴고, 그래서 포트폴리오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한편 하루에 고작 25페이지씩 읽던 책을 하루 100페이지가 넘도록 읽었다. 그밖에도 안하던 짓들을 워낙에 많이 했는데, 사이드 킥으로만 레인을 오가는 수영이 그랬고, 체육관에서 유달리 다리 운동을 많이 했던것도 그랬다. 평소에 절대로 하지 않는 학교에서 밤을 세우는 일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나는걸까. 전부 내가 스스로 벌인 일들인데 좀체 감당이 안되는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통은 이렇게 무리를 하고나면 집에서 멍하게 유튜브를 보고있는게 휴식의 큰 부분이었다. 앱 화면에 무작위로, 그러나 내 시청 데이터를 기반으로 추천되어 올라오는 영상들을 쭉 보고있으면 뇌가 휴식하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 풀린달까. 건축가 유현준 교수님이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구석기시대 인류가 극심한 긴장을 안고 사냥을 마친 뒤에는 동굴에 들어와 모닥불을 멍하게 바라보며 긴장을 풀고 휴식했듯이, 현대 인류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회사에서 일한 뒤 집에 돌아와 티브이 화면을 바라보며 쉰다는 얘기였다.
결국은 눈앞에서 뭔가가 계속해서 움직이는게 긴장을 풀고 휴식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논지였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완전히 멈춰있는 풍경을 볼때보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나 풀입들을 볼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혹은 멀리 빌딩 아래로 보이는 개미 크기의 사람들과 차들이 지나가는 풍경을 창문너머로 고요히 바라볼때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정말로 생각이 정리가 되고, 아늑함에 잠길 수 있게된다. 유튜브에서도 특별한 연출없이 찍은 비오는 거리의 풍경이나, 모닥불 영상이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유튜브를 끊은건 현명한 일일까? 그런 결단이라면 결단을 한 이유는 과거에는 갖고있던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이렇게 중독된듯이 보기 시작한건 회사를 그만둔 뒤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그 전에도 보긴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패드를 사고 나서부터가 진짜였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는지는 몰라도 그 즈음부터 내가 내 스스로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잘 되지 않는다. 일을 하면서 확립한 기획이라는 사고의 프로세스가 있는데, 그 프로세스를 도무지 말끔히 끝맺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모든 아이디어들이 휘리릭 들어왔다가 스리슬쩍 빠져나가고 아무것도 남지않는 느낌이다.
이제는 모든걸 표피적인 이미지로 사고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런 주장을 하는 이론가들이 없지않다. 모든게 이미 이미지이고, 그런 이미지를 유통하고 매개하는 디바이스들이 우리의 사고방식에도, 나아가 행동방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미지의 시대에 과연 이미지를 끊는게 현명한 일인지는 당장은 알수없다. 그러나 이미 끊기로 했다. 그러니까 이번 학기의 결과를 통해서 과연 그게 현명한 일이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이렇게 가슴 철렁 내려앉는 실험을 통해서 확인할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미 시작한 일이다. 시작한 일은 어떻게든 끝을 맺는게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