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위치를 벗어난 사물들
및 그런 글에 대한 글

by 가소로

새벽 한시 이십분이니까 그렇게 많이 늦지 않았다. 줄자, 자전거, 삼천번, 오늘의 글감들을 외면서 왔다. 글감이 명확하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는 시작부터 찬찬히 조망해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번씩 어마어마한 낭패의 좌절이 발밑에서 땅이 꺼지고 올라오는 용암처럼 닥쳐올때가 있다. 오늘 오전이 그랬다. 새벽에 일찌감치 일어났는데도 이렇다할 일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밥만먹고 다시 뻗어버렸다. 열패감이라는 단어가 요즘 쓰이는 말이라 나오는건지 몰라도 그런 감정에 젖어들었다. 막상 아침부터 조망해보니 글이 더럽게 재미없고 쓸데없는 얘기로 점철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핵심은 급하게 수영장을 예약해 방을 뛰쳐나가는 것으로 그 용암같은 낭패감을 어느정도 떨쳐냈다는 것. 운동이 주는 리듬감을 말로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리듬이라는 것 덕분에 오늘 마우스로 클릭을 삼천번 할 수 있었다.


좋은 글을 쓸줄 알고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하고보니 뒤죽박죽이다. 갑자기 클릭 삼천번이라니, 하지만 클릭이라는 행위는 정말 중요하다. 클릭은 공상의 반댓말로 생각만 하지않고 뭔가를 실행해보는 길이다. 실행과 시뮬레이션이 거의 같은말이된 디지털 세계이기 때문에 실행이라는 말을 충분히 쓸 수 있다고 본다. 3D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열어서 클릭을 삼천번 했다고 삼천번의 디자인적 결정을 하거나, 삼천가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건 전혀 아니다. 고작 몇번의 반짝하는 순간이 있었고, 다시 그 빛이 바래지는 시간이 뒤따랐다. 그렇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시간들을 일관성있게 클릭이라는 열차를 타고 잘 통과해냈다는게 중요하다.


요즘 그렇게 묵직하게 뭔가를 지속하는일이 힘들었다. 잘하려는 생각이 크다보니 그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거기에 천착하기보다 새로운것 더 좋은것을 찾게된다. 그래서 모든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스쳐지나가버린다. 하지만 결과물보다는 과정상의 리듬이 훨씬 중요하다. 사실 중요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과정의 리듬을 잃으면 결과물은 있을수도 없다. 결과냐 과정이냐의 질문을 많이들 던지지만 어찌보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경우다. 과정의 좋고 나쁨과 결과의 좋고 나쁨이 엇갈릴 수는 충분히 있지만, 과정의 유뮤와 결과의 유무는 언제나 과정이 절대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과정은 결과보다 언제나 상위에 있다.


삼천번이라고 막상 쓰고보니 그렇게 많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아마도 중요한건 내일도 오늘처럼, 반복해서 꾸준히 이어나가는 일일 것이다. 삼천번 마우스를 누르면서, 세다가 까먹으면서도, 허튼 욕심과 붕뜬 생각들을 가차없이 짓밟아주는 그 카운팅의 위력에 감사했다. 숫자를 세면 세상을 차갑디 차갑게 바라볼 수 있다.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어쨌건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뭔가를 머릿속으로만 웅얼거리는 것과, 그걸 타인들도 볼 수 있는 형태로 꺼내놓는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다. 설사 타인이 보지 못하더라도, 타인이 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놓은 이미지나 글에는 힘이 있다. 선생님을 만족시킨다거나, 칭찬을 받는다거나 하려는 목표를 철저하게 깨부쉬고 싶었다. 어느정도 해냈는지는 몰라도 오늘만으론 부족하다.


역부족. 하루하루가 그 하루로는 역부족인 순간들을 보내고 있다. 오늘 꺼내들었던 줄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 동료에게 선물받은 빨간색 일본상표가 적힌 줄자였다. 앞면은 흰색, 뒷면은 노란색이다. 오늘 스튜디오에서 오른편 구석에 있는 내 자리로부터 맞은편에 내 오른쪽을 보고앉는 친구의 책상까지 거리를 측정해봤다. 한번도 본적없는 줄자의 뿌리를 볼 수 있었다. 5.5미터가 좀 넘는 거리였는데, 줄자를 끝까지 당겼더니 자동으로 말려 들어가야할 테입이 들어가질 않고 버티고 있었다. 억지로 낑낑 넣으려고 해봤지만 도통 들어갈 생각을 안했다. 줄자 역시도, 이건 의인화의 차원을 넘어서 정말로, 오늘 하루 자신의 길이로는 역부족에 가까운 거리를 재다가 다리에 경련이라도 일어난거나 마찬가지다. 결국 줄자는 들어갔다. 한번 들어가고나니 휘리릭 자동으로 감겨들며 원위치를 찾았다. 원위치로 돌아가는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다만 한번씩 원위치를 벗어나 보는것도 나쁘진 않다. 오늘의 줄자가 그랬고, 귀갓길 자전거 위에서의 내가 그랬다. 늘 앉아서만 오는걸 오늘은 뭣때매 갑자기 신이 난건지, 야밤이라 텅빈 내리막 도로를 내려오면서 페달을 밟고 우뚝 서서 거리를 내려다봤다. 페달이라고 해봐야 고작 2-30센치에 불과한 높이겠지만 세상이 퍽 달라보였다. 보이는것들이야 아스팔트 도로에 시퍼런 가로등 갓길에 주차된 자동차 등등 비슷했지만 겨우 그 높이의 변화에 풍경의 느낌이 전혀 달랐다. 마치 장갑차에서 꼭꼭 닫혀있던 해치를 열고 머리를 밖으로 내밀어 외부를 바라보는 정도의 차이였다. 작은 차이지만 나를 바깥에 꺼내놓아 보는건 그렇게 중요하다.


대학원 첫학기 담당 선생님이었던 크리스티와 오늘 약속을 잡아 대화를 나눈것도 그랬다. 30분이 채 안되는 대화였지만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각을 얻게됐다. 가망성이 없다고 해서 섣불리 테이블에서 치워버리지 않을 것. 오늘의 주요 글감 세가지에 대해선 다 쓴 셈이니 크리스티와의 대화에 대해선 상술하지 않기로 한다. 문이 있다. 하지만 노크하지 않고 지나친다. 그것도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문이 있어도 문인지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문에 대해서 얘기나눴다. 두리뭉실하지만 이정도면 나름 상술한 셈이다. 오늘의 글 역시 원위치를 조금 벗어난 것에대한 만족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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