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마음'에 대해서 써보기로 한다. '질서가 무너지는 마음'에 대한 글이 되겠다. 문학이나 영화, 미술, 음악 등 분야를 막론하고 사랑이라는 주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온갖 다양한 주제 가운데 지분율 1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기 때문이고, 끊임없이 새로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여러번 경험하지만 경험이 쌓여도 좀처럼 능숙해지지 않는 파도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게 맞을지 이성적인 자아라고 하는게 맞을지 모르겠다. 이 글은 말하자면 테스트다. 아직 1년도 채 지속하지 않은 루틴이지만 그래도 200일 가까이 매일 쓰는걸 지속해왔다. 과연 글을 쓰는 행위가 '요동치는 마음'이라는 두 어절로는 절대 정의될 수 없는 그 모호한 마음을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사랑이라고 말하는건 그 나름대로 못마땅한 부분이 있지만 '요동치는 마음'이라는 이상한 말로는 더더욱 담을 수 없는 주제다. 가장 단순하게 말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뭔지 모르게 꺼려지는 면이 있다. 어찌보면 바로 그런게 이 '요동치는 마음'의 가장 큰 특징이다. 남들이 보면 모두 별 다를것 없는 사랑이나 연애의 감정에 불과하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진 단어들로는 지시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정의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언어의 세계를 벗어나 있다.
언어란 인간이 수천년동안 자연상태 속에 존재하는 물질들과 그에대한 생각과 감정들을 서로간에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다듬어 정리해놓은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언어는 계속해서 확장해왔다. 그럼에도 아직 세계의 모든 부분들을 언어로 담아낼 수 있는건 아니고, 여전히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한 인간의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인식하고 외부로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언어를 사용한다. 사랑은 말하자면 이렇게 보편적인 인류의 언어 세계에 대한 도전이고, 개인적인 언어소통의 체계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도전이라는 말은 사랑의 위력을 과소평가한 말이다. 재앙이라고 한다면 너무 부정적인 말이지만 그래도 그정도 파괴력은 가진 단어라야 사랑의 힘을 진실에 가깝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요동치는 마음은 어째서 언어의 형태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가? 왜 수학적인 개념처럼 완벽하게 표현될 수 없을까? 사랑은 아주 따뜻한 단어임에는 분명하지만 어째서 그 이면에서는 크든 작든 하나의 세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걸까? 그 마음은 왜 두가지 극단적인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찾아오는가? 이유같은건 중요하지 않다는게 또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사랑이 찾아오고 나면 이유 따위를 물을 여유는 사라진다. 여유 뿐 아니라 이유도 없다. 이유를 묻는건 나중 나중의 일이다. 일단 건물에 불이 났다면 불을 끄는게 우선이고, 천천히 화재의 이유를 명확하게 조사해 밝히는건 그 다음이다. 뜨거운게 있으면 반사적으로 손을 떼고보는게 상식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당연한 일이다. 뜨거운 주전자에 손을대고 이 주전자는 왜이렇게 뜨거운 것인가 묻는것처럼 멍청한 짓도 없다.
사랑은 한 개인의 체재에 반하는 무정부주의 세력이 모든 질서를 전복한 상태와 크게 다를바 없다. 그럴때 어떻게든 체재를 이끌어가야할 입장에서 이 무정부주의 세력과 어떻게 대화하고 타협하고 의견을 조율해 나가는게 최선일까? 문득 떠오르는 한가지 확실한건 이렇게 난폭한 무정부주의자들 역시 영원히 머물지는 않는 손님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듯이 어느날 갑자기 떠날 것이다. 머무르는 동안은 머무르는대로 뜨겁고 혼란스럽겠지만 떠나고 나면 또 떠난대로 영하권의 허전함에 얼어붙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손님들과 대화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제대로 대화를 시도해본 케이스를 당장 떠올리기 쉽지 않다. 지금 그분들이 들이닥쳤다고 가정하고, 대화 해보기로 하자.
1) 잘 오셨습니다 손님, 주문은 어떤걸로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형식적인 대화라서 이제껏 내 경험의 테두리 속에서는 그분들과 대화가 안된건지도 모르겠다.
2) 어떻게 지금 갑지기 들이닥치신 심정이 어떠십니까, 남의집에 무단 침입하셨는데요 미안하거나 그러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이렇게 말을 건다면 퍽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아마 폭동의 정도가 심해지면 심해졌지 가라앉을 일은 없을 것이다.
3) 어찌됐건 잘 오셨습니다. 냉장고 마음대로 열어서 먹을거 먹고 쉬세요. 앞의 두가지 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전혀 반갑지 않은 내 태도가 군데군데 짙게 베어있다. '어찌됐건'이라느니, '먹을거 먹고 쉬세요'라느니 하는 얼핏보면 별 뜻 없는 말들에 낭패라는 심정이 아주 깊게 투영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개선사항을 반영해보자.
4) 어서오세요, 저희집이 가장 잘하는 메뉴로 일단 준비해보겠습니다. 입맛에 맞으면 좋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게 그나마 나은건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이 손님에게는 최대한 극진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예약도 없이 찾아왔다고 박대하거나 불편함을 가차없이 드러내거나 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왜 서빙을 하는 입장에서 대화하는걸까. 이 글은 답이 아닌 질문으로 끝날 수 밖에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