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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2. 2023

갯벌 워킹으로 시작해 이불 빨래로 끝나는 이야기

사이드킥으로 수영장 2번레인을 오가면서 생각했다. 결국은 또 이렇게 되고야 말았다. 내가 세운 타임라인은 하나도 지켜지지 못한채 무너져 버렸다. 플랜 A가 실패로 돌아갔다기보다 플랜 A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날아가버렸다고 말하는게 정확하다. 2주뒤면 졸업인데 어디 원서조차 낼 여유가 없다. 여유가 없는건가, 능력이 없고 계획이 부족했던건가. 하지만 뭘좀 해보려고 하면 마치 늪에서 장화신고 걸어가는 예능인들마냥 발이 푹푹 빠지곤 했다. 빠지곤 한다. 갯벌 워킹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말도안되는 허튼짓을 꽤나 해본 전력이 있다. xxxxxxx 라는 말도안되는 사고도 쳤었다. 아직까지는 쉽사리 입밖에 내기가 불편한 정도의 사고였다. 물론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도 어떻게 일이 잘 풀려서 원하는 바를 이뤘지만 정말로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글을 쓴다면서 이따위로 사건의 핵심을 엑스 x 처리하는 필자는 아마도 나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허튼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작 중요한 원서 작성은 하지도 않고 브런치에다 말도안되는 글을 갈겨대고 있으니 말이다. '허튼짓'이라거나 '갈겨댄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난폭하고 자조적인 어감이 있어서 불편할 독자분들이 있을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써야할만큼 스스로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긴 내가 이해해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발이 푹푹 빠지는 이 갯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갯벌도 결국은 내 자신의 사고와 행동의 통제와 관련된 문제다. 갯벌도 그러므로 나 자신의 일부인 것이다. 사실 이 갯벌이 낯설지만은 않다. 한번씩 밀물이 끝나고 물이 다 빠져나간 뒤에는 끝이 안보이는 갯벌 한가운데 서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곤 했다. 언제적에 마스터한 걸음마인데 다시 걸음마부터 배워야 하는 그런 공간속에 '놓여있는' 나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듯 하지만 갑자기 갯벌에는 여러가지 다양한 해산물이, 그것도 영양가 만점이 해산물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이렇게 문장으로 옮기고 말았다. 아직은 좀더 갯벌의 낭패로 인한 짙은 어둠에 대해서 써야하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반전을 시도해버렸다. 


시도했다고도 할 수 없다. 좀더 그 어둑어둑하고 질척질척한 패배감과 당혹감 속에서 똬리를 틀고 괴로워했어야 하는데 너무 일찍 쥐구멍에 볕이 들어왔달까. 물론 이 글속에서 빛이 들었다고 해서 내 현실속에 빛이 들어온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마  글을 시작한 데에는 그 퀴퀴한 좌절의 이불 속을 헤집고 깊숙이 들어가서 따뜻하게 몸을 덮히고 싶은 이유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엄마가 이 케케묵은 이불을 가져가서 고성능 드럼 세탁기에 잘팔리는 액체 세제를 투여해 새것처럼 빨아버린 느낌이다. 거기에다 신제품으로 출시된 고성능 드럼 건조기까지 돌려서 지저분하게 붙어있던 먼지덩어리까지 싹 빠지고, 그 뜨거운 열기에 따끈따끈한 빵에서 나는 구수하고 고소한 냄새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바로 그 냄새가 폴폴 풍겨오는 느낌이다. 


이상한 일이다. 이제껏 좌절은 나의 나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좌절과 엉켜서 이리저리 사투를 벌이는게 내가 나아가는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좌절하는게 당연한 사태 속에서도 왜 나는 좌절의 찌든때를 이렇게 빨리 박탈당하고 말안단 말인가. 그 세탁기와 건조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배송이 됐고, 나의 어머니는 언제 신제품 사용법을 그렇게 빨리도 익히셨단 말인가. 글을 대충 보는 독자가 있다면 이 글이 정말로 더러운 이불과 이불빨래에 대한 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뭐 그것도 나쁘지 않다. 글을 반드시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읽어야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너무 일찍 들이닥치는 밀물에 당황한 갯벌의 어부마냥 글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할지 모르겠다. 때마침 이 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머니의 카카오톡이 글의 마무리로부터 나를 구원해준다. 사실 어머니도 그냥 하신 카톡일테지만 내가 해석하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이불빨래에 대한 이야기로 읽는 독자 역사 전혀 탓할게 못된다. 이만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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