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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20. 2023

유튜브 없는 50일과
찍히지 않은 마침표

오랜만의 새벽이다.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비 비린내가 났다. 밤새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LA에서는 흔치않은 비고, 흔치않은 냄새다. 비린내라고 하기에는 억울할만큼 나에게는 좋은 냄새다. 새벽과도 비와도 아무런 연결고리는 없지만 유튜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어떤날은 새벽에 일어나 한참동안 랜덤하게 올라온 추천 영상을 정신없이 보면서 새벽을 태워보내곤 했다. 유튜브를 보던시절의 기억이다. 날짜를 세어보니 유튜브를 멀리한지 이제 50일이 넘어간다. 학기중에 유튜브를 끊기로 하면서 그게 학기를 소화하는데 득이될지 실이 될지 가늠해보기로 했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유용한 정보들도 많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 중독성 시청을 중단하는 대신 잃게되는게 너무 크진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학기가 마무리된 지금 돌아보면 나는 거의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유튜브에서 반드시 필요한 영상만 선택적으로 보는 통제력을 얻게됐다. 물론 영상의 홍수 속에서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통제력이지만 이정도의 자제력을 가지게 된적은 지금까지는 없었다.


나의 뇌는 꼭 유튜브 영상이 아니라도 계속해서 곱씹을 정보를 갈구하는 모양이다. 마치 개들이 뭔가를 계속해서 씹어야 하듯이 말이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틀어놓는 시간이 많아졌다. 혹은 시간 여유가 있을때에는 유튜브처럼 짧은 템포의 10분 안쪽의 영상 혹은 초단위의 쇼츠보다 영화정도의 호흡이 긴 컨텐츠를 많이 보게됐다. 유튜브에 침잠해있을때에는 사실 영화 한편 진득하게 보기가 어려웠다. 책읽기는 워낙에 강압적으로 습관을 들인 덕분에 늘 지속했지만 소설같은 서사가 있는 이야기는 또 다른 얘기였다. 하지만 유튜브 시청을 중단한 이후에는 장편 소설도 한편 읽었고, 단편소설도 읽는 중이다. 각각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 그리고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다. 


영화는 총 세편을 봤는데 버드맨, 30일, 그리고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덩크다. 버드맨과 슬램덩크는 명성이 자자해서 보게된 편이지만 30일같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평소같으면 거들떠도 보지않았을 작품이다. 하지만 보고나서는 진짜 웃음이 터져나와 배를잡고 웃은게 몇년만인가 돌아보게 됐다. 그만큼 재미있었다. 재밌는건 이 모든 소설과 영화의 이야기 속에 공통적으로 스며있는 요소가 하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 어쩌면 기승전결의 구조로 진행되는 이야기들로서는 당연한건지도 모른다. 어떻게든 독자의 관심을 마지막까지 끌고갈 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제시하는 메시지 자체가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에 대한 것이다.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확률과 숫자가 지배하는 세계속에서도 신념을 잃지않는 일의 중요성. 버드맨은 마지막에 가서야 자기 자신을 찾아 날아오르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비슷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슬램덩크의 역전극은 말할것도 없다. 왼손은 거들뿐, 이라고 소리가 제거된 대사와 함께 던지는 마지막 한골로 승부가 뒤집힌다. 30일 역시, 이혼을 하느냐 마느냐, 하다가 결국은 이혼 후 떠나는 아내를 공항에서 마지막 순간에 붙잡고, 그래도 떠나가고, 고개를 떨구고 돌아서는 주인공을 등뒤에서 불러세우는 여주인공의 한마디에 새로운 90일이 시작된다. 


무엇이든 끝까지 해봐야, 끝까지 살아봐야 아는건가. 유일하게 유튜브에서 클릭해 봤던 6시간짜리 프레젠테이션 영상 - 서리풀 보이는 미술관 경쟁공모안 발표중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쟁쟁한 건축가들의 발표였지만 마지막을 장식한 팀이 결국은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됐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거의 모든게 있다는 것. 누군가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요소들 중 마지막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끝이 아니라면 아직 많은게 열려있다. 섣불리 결론을 내릴일이 아니다. 결론은 때때로 상상을 완전히 넘어서는 곳을 향해 나아가곤 한다. 모른다는건 불편하고 불안한 일이기 때문에 모르는걸 모른다고 하는데 용기기 필요하다. 미리 예상가능한 마침표를 찍어버리는 대신 모른다고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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