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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21. 2023

해외송금 완료시점에 대한
뜬구름 잡는 논의

근시일내에 이렇다할 진전이 보이지 않을때에는 5년 뒤를 생각해본다. 이제까지 경험한 거의 모든 5년 뒤의 세계는 5년 전에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일어날것같지 않던 일이 일어나기도하고, 그런 일이 존재하는지조차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새롭게 생겨나기도 한다. A냐 B냐를 고민하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는게 오늘이라면 5년뒤의 오늘 속에선 A도 B도 아닌 C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된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말이 그렇데 대단한걸 담는 말은 아니다. 예를들면 해외 송금도 그중 하나다. 생활비 명목으로 한국계좌에서 외국 계좌로 3000달러 정도를 송금하곤 한다. 그럴때마다 한번씩은 이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을까봐 노심초사하게된다. 중간에 어디론가 증발해버리진 않을지 불안해 지는 것이다. 그런 불안감이 들기 시작하면 송금후 하루, 이틀 - 길어봐야 이틀이면 대부분이 해결되지만 그 이틀이 영원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시간은 유한한데 유한하면서도 무한의 효과를 내는 감옥에 갖히게 되는 느낌이다. 


일단 불안한 시간의 감옥에 수감되고 나면 출소라는 결말은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처럼 다가온다. 세상이 거기서 막을 내릴 것 같은 예감이 모든걸 지배하게 된다. 아무래도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가장 두려운 법이다. 기한이 명확한 고난은 눈 질끈감고 견디면 그만이지만, 기약없는 고난 속에서는 눈을 감기조차 두려워진다. 얼마나 더 추락할지 알 수 없고, 반등이라는게 있을지에 대한 전망도 전무하다. 그런 터널을 통과하는 방법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단순한게 최고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한걸음을 걸어내는 일이다. 지금 바로 코앞에 보이는 딱 한걸음을 계속해서 걸어나가는 것. 


단, 한걸음이 그 한걸음으로 끝나지 않도록, 새롭게 시야에 들어오는 새로운 한걸음을 또 걸어나가는게 포인트다. 또 걸어나가고 또 걸어나간다. 그렇게 끝까지 걸어나간다. 끝까지라는 말에 걸리는 의미의 낚시대에 걸리는게 아무것도 없다는게 맹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걸어나가는게 핵심이다. 그러다보면 끝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의심과 불안에도 무뎌질 때쯤, 내가 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도 희미해져갈때쯤, 그렇기 때문에 꽤나 갑작스럽게 끝은 찾아온다. 


기다리는 끝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지만 깜빡 잊고있던 끝은 뜬금없이 얼굴을 내밀곤 한다. 뜬금없이 등장하는 끝은 한걸음들이 쌓이고 쌓여 보이지 않던 수위를 넘어섰다는 사실의 증거와 같다. 그 수위는 역시 수위를 찾아헤매는 눈에는 까마득히 보이지 않는 수위다. 저 높이 어딘가에 있는 그 벽의 정점을 바라보는것도 잊어버릴때쯤, 그만큼 내 발앞의 걸음들에 빠져들었을 때쯤 정점은 내 발걸음 아래로 내려든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오늘, 흠뻑 젖은 신발과 바지에 정신없는 채로 은행 ATM에서 현금을 뽑으면서 확인한 통장 잔고처럼 그렇게 내려든다. 송금은 그렇게 은연중에 완료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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