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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28. 2023

점프하는 디자인과
점프하지 않는 인공지능

분석력으로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을줄 알았다. 물론 질문과 분석이 필요하다. 그런데 많은경우, 디자인을 하는 입장에 서보면, 분석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지점이 찾아온다. 이성적인 인식만으로는 그 다음단계를 찾을 수 없는 지점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감을 믿고 점프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먼 점프를 통해 어딘가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면, 점프 중간에 추락해버리지 않는다면 나중에 기회가 주어진다. 점프를 통해 정신없이 휙 지나온 루트를 찬찬이 돌아볼 기회 말이다. 그리고 분석은 그때가 되어서야 뒷북처럼,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각주처럼 뒤따를 뿐이다. 


그러니까 분석은 창조에 있어서 충분조건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걸 부정하는게 아니라 분석적인 능력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게 핵심이다. 모든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틀어 분석이 90퍼센트 이상의 임무를 해결해주더라도, 나머지 10퍼센트가 해결되지 않으면 디자인은 완성될 수가 없다. 좋은 데이터 애널리스트라고 좋은 데이터 서비스를 디자인하지는 못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일어난 사건을 분석하는 것과, 애초에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계단을 하나씩 순차적으로 체계적으로 오르는 분석만으로는 역부족. 거의 모든 디자인의 과정 속에서 계단은 어딘가에서는 말도안되게 끊어져있기 마련이다. 그곳에서는 분석이 건널 수 없는 점프같은게 필요하다. 점프는 그렇다면 어디에서 동력을 끌어오는걸까. 그 이전에 점프란 도대체 뭘까. 인공지능과 사람의 아이디어 구체화 과정을 비교해보면 설명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인공지능은 점프하지 않기 때문이다.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사람으로서는 소화 불가능한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계산해봄으로써 최적의 결과를 산출한다. 


예를들어 감자, 무, 고등어, 김치, 미역, 조개, 소갈비, 파스타, 라면, 부싯돌, 성냥, 참기름, 사과, 기타 등등 백여종의 무작위적 재료가 주어졌다고 하자. 이것들을 조합해 가치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할때 인공지능은 수학적 조합을 통해서 모든 경우를 검증하고 그 검증을 통해서 가장 가치가 높은 경우를 판별해낸다. 아마도 조합되는 재료의 수가 하나인 경우부터 시작해서 둘인경우, 셋인경우, ... 전체 집합의 수인 n개인 경우까지 모두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 만들어진 결과물이 세계에 존재하는 그와 비슷한 것과 얼마나 유사한지, 유사하다면 그 대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정도의 가치를 가지는지 비교대조해 조합의 결과물의 가치를 판단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지않다. 인공지능의 방법론을 사용한다면, 재료의 수가 10개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도 10 + (10*9 + 9*8 + 8*7 +...) + (10*9*8 + 9*8*7 +......) 등등 계산만으로도 끝이 안보이는 수의 경우를 반복해야 한다. 그래서 딱 보기에도 말이 안되는 경우는 사전에 걸러내고 (예를들어 성냥과 참기름의 조합 같은 것) 그럴싸한 것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게된다. 이 부분이 점프라고 할 수 있다. 그럴싸해 보이는 것을 가려내고 거기에 집중하는 선택을 하는 과정이 바로 점프다. 점프를 하고나면 다시 인공지능적 방법론, 분석적 방법론이 유용해지는 시점은 찾아온다. 그러나 점프는 엄밀히 말했을때 분석적으로 일어나는게 아니다. 점프는 주관적이고, 감각적이고, 직관적이다.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이던 이세돌과 알파고가 대국을 벌인적이 있다. 2016년 일이다. 이벤트를 주최한 구글이 만든 언론배포자료와 차후에 만들어진 딥마인드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이 이벤트의 구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 대결은 인간의 창의적 직관과 인공지능의 고성능 계산의 경쟁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인간의 고유한 직관, 창조력의 원천이 인공지능의 통계적 역량에 의해 패배한 셈이다. 즉, 인간의 점프는 컴퓨터의 계단식 연산 (혹은 말도 안되는 고속 에스컬레이터)에게 패했다. 


이런 구도를 이미 오래전에 바벨의 도서관에 비유한게 소설가 보르헤스였다. 이 도서관에는 모든 문자열로 조합 가능한 모든 텍스트가 꽂혀있다. 말그대로 임의의 경우의 수 연산에 따른 텍스트들일 것이다. 어떤건 'ㄱ' 단 한글자로 끝나기도 할테고, 'ㅈ앨ㄴㅁ 그림에가 ㅈ앎내다고' 처럼 말도 안되는 조합도 있을 것이다. 통계적 조합은 의미를 바탕으로 이뤄지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물론 지나치게 컴퓨터의 인지를 폄하한 것이다. 대부분의 인공지능에게 기본적인 통사구조syntax 인식은 이제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순수한 수학적 조합의 측면에서 봤을때 이런 무의미한 텍스트도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수히 많은 조합을 빠짐없이 해낸다면 어떻게 될까. 그 조합 중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포함될 것이다. 리어왕 같은 작품 말이다. 또한 리어왕에서 구두점 하나만 빠진 텍스트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나아가 전체 텍스트에서 한단어쯤 오탈자로 보이는 텍스트도 존재할 것이다. 리어왕과 염상섭의 삼대가 반씩 섞인 텍스트도 존재할 것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연설문이 각각 한문단씩 발췌되어 무작위로 섞여있는 텍스트도 존재할 것이다. 


재밌는건, 이 무수한 조합 속에는 아직 탄생하지 않은 미래의 역작이 될 소설역시 포함되어 있으리란 사실이다. 놀랍게도 가설상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아직 실현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점프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점프란건 이제 의미가 없는걸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점프란건 인공지능 시대에 의미가 없는걸까. 답으로 쓰고싶은 문장이 있지만 생략하고 마침표를 찍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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