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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30. 2023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건축

Jacque Herzog in Art Basel

건축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 라고 한 건축가는 무대에서 말했다. 얼마전 서리풀 보이는 미술관 국제 공모에서 당선된 자크 헤어조그 Jacque Herzog의 말이었다. 올해 아트바젤이라는 세계적인 예술 관련 행사의 공개 토론 자리에서였다. 세계 각지에서 미술관 관장, 예술가, 비평가 등이 모여서 미술관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자연스럽게 미술관을 세계 이곳저곳에 많이 짓는 건축가로서, 마침 행사가 열리는 스위스 출신이기도한 사람으로서 초청된 건축가 대표가 자크였다. 


자크는 오래전에 뉴욕 모마에서 겪었던 '끔찍한 경험'에 대해서 먼저 얘기했다. 모마가 리모델링 되기 전, 잭슨 폴록의 거대한 그림이 - 페인트를 뚝뚝 흔뿌려놓은 그 유명한 그림이,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는데다 천고가 '나지막한' 갤러리에 전시된걸 봤던 얘기었다. 사실 나는 보통 사람으로서 그게 왜 끔찍한 경험인지 바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문맥상으론 적어도 꽤나 끔찍해야만 하는 장면이었다. 말하자면 카펫과 낮은 천고가 예술작품의 체험을 끔찍하게 만든다는 것. 


하지만 진짜 핵심은 그 이후에 드러났는데, 자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 그 끔찍한 공간에도 불구하고 - 무슨 작품이든 예술이라면 그 작품만으로 감상은 즐겁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에겐 공간이 얼마나 끔찍하든간에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 늘 좋은 것이다. 건축은 예술의 좋음을 훼손하지 못한다. 다만, 공간이 예술 작품의 감상에 적합하게 디자인 된다면 안그래도 좋은 예술의 체험이 더욱더 좋아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건축은 필수적이진 않지만 있으면 좋은 어떤 것이라는 말이었다. 


아마도 건축을 여느 건물과 동일시한다면 그의 말이 납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무슨 작품을 보든, 설사 그게 야외 전시라고 해도 어떤 형태의 구조물은 항상 필요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작품의 감상에는 건축이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자크의 얘기 속에서 건축이란 꽤나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건축적인' 건축물에 국한해서 건축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 같다. '건축적'이라는 말이 등장하면 아마 수많은 건축가들이 환호하는 한편 다른 누군가 - 혹은 대중은 정확히 뭘 말하는지도 알기 어려워 고개를 갸우뚱 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실제로 건축적이라는게 어려워서 이해를 못한다기보다는 애초에 그 의미가 모호하기 때문에 대중의 갸우뚱은 충분히 합리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 아트바젤 영상이 기억에 남은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자크가 건축가임에도 스스로 건축의 역할을 폄하하는듯한 발언을 한게 의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발언은 결코 건축을 폄하하는게 아니다. 건축을 필수재가 아닌 사치재로 분류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필수적이진 않지만 있으면 더 좋은 것. 여느 명품 가방이 그렇듯, 여느 순수예술이 그렇듯, 없어도 먹고사는데 지장은 없지만 있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그런 것 말이다. 


건축은 확실히 주인공이 아닌 배경을 디자인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뛰어난 건축가라도 기껏해야 그 사람이 디자인하는건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에 불과하다. 절대적으로 뭔가를 결정하지도 못하고, 간접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열어주는게 공간이다. 결국은 사람이 주인공으로서 그 배경 속에서 먹고, 일하고, 즐기고, 휴식한다. 디자인을 하다보면, 건물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다. 어제 오늘도 그렇게 건물 자체에 매몰되어 더이상 디자인에 진전이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그럴때 건축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결코 아니라는 자크의 말을 떠올리는게 도움이 된다. 건축은 별 것 아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없으면 없는데로 괜찮고, 있으면 땡큐인 그런 정도의 옵션 같은 것. 그렇게 생각하면 디자인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사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아트바젤 

Conversations | The Architecture of the Future Museum

https://youtu.be/m62r2xRloNs?si=MdP38AnrWSKRqa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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