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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10. 2023

서리풀 보이는 미술관
당선 설계안 리뷰

지난 11월말 있었던 서리풀 보이는 미술관 설계안의 심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발표에 참가한 총 일곱개의 건축사 중에 마지막 순서로 발표한 Herzog de Mueron의 디자인 안이 당선됐습니다. 앞으로 구체적인 안의 발전과 착공 등의 프로세스에 꽤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3년 정도면 완공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테헤란로의 끝에 자리잡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 서울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올겁니다. 건물의 외관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대한 첫인상은 긍정적으로는 단아함, 혹은 부정적으로 본다면 지나친 단순함이 아닐까 합니다. 


건물은 커다란 흰색 정사각형이 꼭대기로 가면서 완만하게 좁아지는, 말하자면 단층짜리 지구라트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여기서 특이할만한 점 두가지는 열린 공간 그리고 주름입니다. 우선 지상층 공간 그리고 맨 윗층의 아랫부분이 사방으로 열려있습니다. 그래서 보통의 규칙적인 육면체가 꽤나 달라보이게 됩니다. 이 육면체는 공중에 떠있는 모양인 동시에, 맨 윗부분은 마치 선반을 머리에 이고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한편, 육면체의 네 옆면에는 서로 조금씩 다른 모양의 주름이, 말그대로 치마에 주름이 지듯이 잡혀있습니다. 그래서 원래라면 평평했을 네 면에 단순하지만 다양한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이 형태의 변화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형태는 시간과 무관하게 절대적인 도형으로서의 변화를 품기도 하지만, 시간에 따라서 보이는 모습이 달라지는 식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평평한 정육면체는 형태도 고정되어있고, 시간에 따라서도 평면상에 그리 큰 변화가 생기진 않을겁니다. 고작해야 네 면의 색채가 달라지는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조합의 주름은 그 자체로는 단순하지만 시간이라는 맥락 속에서는 훨씬 풍부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태양의 방향에 따라서 그림자의 모양이 달라질테니까요. 그래서 별다른 굴곡없는 육면체의 디자인이 지루하지 않은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내부를 보면 어떨까요. 내부에는 역시나 상층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건 같지만 이번에는 원형 단면을 가진 공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건축가는 그걸 눈 eye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상부터 꼭대기까지 천장을 관통하는 그 원뿔형  공백을 통해 서로 다른 층들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일겁니다. 내부 역시 이렇게 텅 빈 고깔형 공간을 제외하면 특별한 부분이 없습니다. 이렇게 단순하다는 것, 그게 이 디자인 안의 핵심이 되어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내외부 형태 속에 채워질 프로그램은 어떨까요. 역시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붕 더있는 지상층의 네 모서리 부분에는 부수적인 공간이 자리잡습니다. 도서관, 레스토랑, 작품 운송을 위한 화물공간, 들어오고 나가는 작품 취급을 위한 공간이 그것입니다. 말하자면 특수공간이 네 꼭지점에 자리잡고, 그 주변의 열린 공간에는 정원이랄지 공원이랄지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채워집니다. 이제 지상층에서 올라가 꼭대기의 열린공간이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 작품 수장고입니다. 단, 네가지 보존 취급 기준에 따라 각기 다른 성격의 수장고가 층별로 들어섭니다. 


습도와 온도가 중요한 보존환경을 결정짓는 요소입니다. 그래봐야 고작 5퍼센트 내외의 습도차이에, 온도는 20도를 기준으로 2도 내외의 오차범위로 구분되지만 이런 습도와 온도의 조합에 따라 내개의 층이 구분되고, 각각에 맞는 작품들이 보관되게 됩니다. 그래서 2층에는 대규모의 작품들과 합성 소재의 작품들, 3층에는 흙과 금속, 서재로 만들어진 오브제들, 4층에는 섬유나 그림작품, 마지막 5층에는 특히 민감한 나무와 종이 소재의 작품들이 자리잡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일반 대중의 접근 성격도 다르게 정의됩니다. 


2, 3층은 비교적 덜 민감하기 때문에 관람객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체험할 수 있지만, 4, 5층은 일반적으로는 외부에서 눈으로만 볼 수 있고, 가이드의 안내 하에서만 출입할 수 있습니다. 모든 공간을 출입할 수 없다는게 아쉽기도 하지만 지극히 합리적인 기준으로 보입니다. 사람이 드나드는게 그리 큰일같지 않을지 몰라도 내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크게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체온, 혹은 입김, 그리고 외부에서 유입되는 공기가 온도와 습도를 크게 좌우합니다. 사람이 느끼기엔 크지 않더라도 예민한 작품의 보전에는 큰 영향으로 미치는듯합니다.  


가장 지배적인 네개의 수장고 윗부분에는 사방으로 열린 아마도 유리벽으로 둘러쌓일 사무실과 카페가 있습니다. 그 바로 위에는 보존작업을 위한 시설이 있습니다. 하단의 네 층에서 단순히 작품을 보관한다면 이곳에서는 전문인력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해 보존작업을 벌이는겁니다. 이 보존 시설역시 평소에는 수장고만큼 닫혀있지만 이제는 대중에게 보여지는 구조로 설계됩니다. 기다란 슬릿을 통해서 카페쪽에서 위를향해 작업모습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경쟁에 참여한 다른 안들 역시 가지고 있지만 Herzog de Mueron의 안에서만큼 단순명료하게 구형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언뜻 보기엔 너무 평범한게 아닌가 싶지만, 조금씩 뜯어볼수록 드러나는 단순 명료하게 배치되 요소들이 이 안의 특징이 아닐까 합니다. 외관도 단순하고, 내관도 단순하고, 프로그램 배치도 단순합니다. 외관은 완만한 경사의 주름진 큐브, 내관은 실린더 모양으로 모든층을 관통하는 공백, 프로그램은 지상의 열린광장과 수장고, 사무실, 보존시설로 구분됩니다.  


이런 내용이 어떤 이미지와 드로잉을 통해 전달되는지도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미지를 통해서 그들의 개념이 드러나고 미적 감각 역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별도의 글에서 다뤄볼 예정입니다. 

글: 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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