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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Dec 09. 2023

리얼한 건축, 언리얼한 건축

오늘은 언리얼 엔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애초에는 게임 개발엔진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건축이나 다른 산업 디자인 관련 툴로도 자주 사용되는 3D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언리얼 엔진이다. 지금 사용되는건 버전 5, 이런 소프트웨어도 스마트폰처럼 시리즈에 따라 업데이트가 된다. 언리얼 엔진의 장점은 무료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디자인 툴을 이용해 만들어낸 컨텐츠로 얻는 수익규모의 구간에 따라서 비용을 지불하는 식이다. 그래서 정가제라고 할 수 없고, 많이 버는 쪽에서는 러닝게런티처럼 일정 퍼센티지를 지불해야하는 식이었다. 나에게는 해당될 것 없는 얘기다. 


보통은 건축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가 따로 있었다. V-ray 라는 렌더링에 특화된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었다. 물론 이것으로 다른 디자인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리얼처럼 수많은 대중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는 구분이 되는게 보통이었다. 언리얼은 얘기만 많이 들었지 나와는 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1년쯤 전에 수업에서 영상을 만들면서, 그리고 이번학기 바로 지금 건물 디자인을 하면서 완전히 생각이 달라졌다. 진작에 달라졌어야 했다.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은 재미있다는 것이다. 건축은 개념적인 디자인 단계도 재미있지만 그 개념화된 공간을 실제로 보이는 형태로 구현해보는 과정 역시 그만큼 재미있다는걸 이제야 알게된다. 라이노라는 형태 위주로 특화된 아주 기술적인 디자인 툴로 모양을 만든 뒤에, 언리얼 엔진에서 그 기하학적 형태를 불러와서 색깔을 입히고, 질감을 더하고, 빛을 쏴서 그림자를 늘어뜨림으로써 추상적인 형태를 현실속으로 불러온다. 이번에 처음으로 파트너와 함께 작업하면서 내가 어떤식으로 디자인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적잖은 깨달음을 얻게된다. 


파트너인 알리라는 친구는 내가 와이어프레임 모드에서 디자인하는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 놀라는 모습에 도리어 놀랐다. 와이어 프레임 모드는 어떤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선들만을 보면서 작업하는 모드다. 예를들어 축구공이 있다고 하면, 일단 구의 형태가 하나의 원과 그 원에서부터 구의 머리꼭지로 이어지는 심이 합쳐진 형태로 표현되고, 그 주변을 감싸는 여섯개의 선으로 이뤄지는 육각형 도형이 내려앉는 식이다. 그러니까 선과 선 사이를 채우는 면과, 면이 발하는 빛, 질감, 구체적인 디테일 등은 완전히 생략되는 식이다. 


현실적으로 사물은 빛을 반사함으로써 우리 눈에 인지된다. 감각적으로 우선 인지된 뒤에야 그 형태의 기하학적인 특성이 이성을 통해서 파악되고 이해된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정사각형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정사각형이라는 기하학적인 개념을 가질 수 없을까? 엄밀히 말한다면 현실 속에 정사각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같은 길이의 네 변이 완벽한 직각을 이루며 만나는 그런 도형은 보이는 세계에는 없다. 우리 머릿속으로 어디까지나 수학적으로 정의할 뿐이다. 우리가 보는것은 정사각형과 비슷한 모양의 사물들이 반사하는 빛 입자들에 불과하다. 


빛 입자들에 '불과하다'고 이제까지 생각해왔고, 중요한건 그 추상적인 기하학적 형태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내가 알게되는건, 구체적인 형태없는 개념적인 도형이 현실속에서 보이고 만져지는 형태로 태어나는 과정이 얼마나 멋진가 하는 것이다. 언리얼 엔진에서 나는 내가 머릿속에서 전지적으로, 또 개념적으로 디자인한 공간을 다양한 카메라 각도에서 바라보고, 걸어보고, 혹은 날아다녀보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려가면서 장난감 만지듯 다뤄보기도 한다. 건축이 말그대로 장난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하지만, 장난같은 건축이라고 건축이 아니란 법은 없을 것이다. 건축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떻게든 이뤄질 수 있기 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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