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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Jan 03. 2024

D-Day를 향해가는
시간의 폭발과 소멸

야심차게 기간을 정해두고 하는 일을 시기별로 구분해보자. 마치 지구과학 시간에 배운 별의 탄생과 소멸과정을 연상케 한다. D-100, D-99... 하며 헤아리는 초기단계는 아주 밀도높고 느리게 흘러가는 초기단계다. 하지만 약 5일을 넘어가면 점점 페이스가 빨라지는게 느껴진다. 루틴이 익숙해지고, 오늘이 여느 어제처럼 마치 트레드밀 벨트 돌아가듯이 자동으로 돌아간다. 어제의 별과 오늘의 별 사이에 전혀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또 어느 시점이 되면 - 즉 몇일차인지도 모르고 맞아하는 날들이 찾아오면, 그런 날이 찾아왔다는 말은 카운팅을 하지않고 지나가버리는 날들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 시점은 당사자로서는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지만, 지금 남의일처럼 거리를 두고 돌아보는 입장에서는 무척 드라마틱한 면이 있다. 시간의 흐름이 점차 빨라지다 마침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걸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쥐불놀이라는 도저히 납득이 안되는 케케묵은 사례밖에 떠오르지 않는 이유를 알수가 없다. 여튼 불덩어리가 들어있는 깡통같은걸 철사에 메어, 마치 소프트볼 투수가 공을 던질때 팔을 윙윙 휘두르듯이 휘두르기 시작하면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마침내 팔이 불덩이를 돌리는건지 불덩이가 발을 돌리는건지 애매해지는 시점이 찾아오고, 마침내 철사를 움켜쥐고 있던 손에 힘이 풀리면서 불덩이는 통제를 벗어나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것이다. 


카운팅을 잊어버리는 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 날이 사나흘 지속되다보면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오늘이 몇일차인지 되짚어보기도 한다.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날들이 지나있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게 되지만, 그 놀람이란 그다지 생생한 충격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하루하루 세어가며 보낸 날들의 무게에 짓눌린 마음은 그렇게 싱그럽지 못하고, 외부의 사건에 생생하게 반응할 컨디션이 못되기 때문이다. 다시 하루정도 날짜를 인지하며 보내보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그러나 이번에는 거의 의식적으로 혹은 체념적으로 통제를 벗어난 속도로 흘러가는 나날들을 방관하게 된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니까 이제는 더 늦기전에 마음먹은 바를 이뤄야 하겠다고 다시금 자각하지만, 그걸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밖에 남아있지 않았음을 인지하는 시점 말이다. 기껏해야 일주일, 혹은 3-4일정도다. 이 시기가 되면 카운팅은 이전의 카운팅과는 다른 성격이 된다. 사실상 이 카운팅은 카운팅이라고 할 수 없다. 이부분이 상당히 논란의 여지를 갖고있다. 표면적으로는 똑같이 D-3, D-2, D-1... 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보내는 날들일텐데, 뭔가 명확하게 이 마지막의 몇일들은 이전까지의 카운팅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면 표면적으로 마지막 몇일을 세더라도 본질적으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총 100일이라고 쳤을때, 100일의 순간 순간을 귀하게 여겨 하루하루 세어가기로 했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숫자로 기술되는 시간은 무의미해지는 지점을 맞이하는게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별 폭발과 소멸과 같은, 시간이 폭발하고 소멸하는 지점이다. 그럴거면 카운팅을 왜했나 하는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반문은 죽을거면 왜사냐, 쌀거면 왜 먹냐, 깰거면 왜 자냐, 숨을 내쉴거면 왜 마시냐 하는식의 질문들 만큼이나 어리석은 질문이다. 시간이 폭발하고 소멸함으로써 우리는 잠깐이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전혀 다른 방식의 체험에 대해서 글을 쓰는게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러나 이미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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