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소로 Jan 11. 2024

세상의 놀라운 따뜻함을 대신해

"지금으로서는 이런 문장밖에 쓸 수 없지만" 이 문장으로라도 글을 시작하기로 하자. 비단 글만의 문제는 아니다. 뭔가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그게 의욕 충만하고 욕심이 나는 일일수록,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심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으로서는 40kg 밖에 들어올릴 수 없지만, 혹은 지금으로서는 이런 노래밖에 지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지금 내가 있는 지점을 받아들이는게 시작의 요령중 하나다. 하지만 아마도 시작할 때에는 모든게 초라하고 정리되지 않은 모양새일 것이다.  


대학교에서 김연수 작가님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 역시 대학생이던 시절, 글쓰기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아주 값진 강연이었다. 글을 쓰는 행위가 시작되기 전에, 글을 읽는게 먼저였다. 학교 도서관에 온종일 앉아서 책들을 읽어나갔다고 한다. 나는 나역시 때로 구석에 처박혀 뭔가를 읽고 쓰는 그 도서관에 김연수 작가가 앉아있는 뒷모습을 상상했다. 그렇게 읽다보니 갑자기 뭔가가 쓰고싶어지기 시작했다.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시를 썼다고 한다. 읽은 책중에는 철학서도 많았다. 그래서 초기의 문장에는 개념어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구체적이고 선명한 사건이나 행위를 써야한다는걸 깨달았다. 그렇게 글을 쓰다보니 생업으로도 글을 쓰는 잡지사 기자일을 하게됐다. 물론 글에대한 근원적인 욕구를 해결해주지는 못하는 그런 직업이었다. 갈등을 거듭하던 끝에, 설사 실패하더라도 단 한번도 모든걸 걸고 글을 써보지 못한다면 후회가 될 것 같아서 잡지사를 그만두고 (이부분은 내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소설쓰기에 돌입했다. 그렇게 소설가가 됐다. 


김연수 작가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요령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셨다. 나쁜글을 많이 써보면 한번씩은 좋은글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그날 작가님에게 들은 많은 얘기들이 그랬다. 듣고보면 맞는말인데 그 속에는 상식과 어긋나거나 상식을 뒤집는 뭔가가 있었다. 자신에게는 슬럼프가 특별히 없었다며, 그것 역시 나쁜글을 써도 괜찮으니 뭐든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또한, 독자와 작가의 관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소설을 누군가가 이해해 주길 바라는지, 혹은 이해할 수 있는지에 질문에 대해, '그 누구도 내가 담아놓은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 해서도 안된다'고 답했다.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딘지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이해 해서도 안된다, 이해하면 큰일나는거다' 하고 얘기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직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역시도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되는 말인지도 모른다. 오늘은 갑자스럽게 느끼게된 세상의 소소한 따뜻함에 대해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대로 쓰게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일단 랩탑 앞에 앉으면 그때는 다른 문장이 떠오르고 이어져가는 것이다. 이따금씩 세상은 이렇게 놀라운 얼굴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전글 흔치않은 욕설사용 메뉴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