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소로 Jan 23. 2024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거리와
친절한 침범자들

모자창 끝에 빗물이 고여 걸어가는 걸음에 따라 좌우로 웽웽 흔들리다가 왼발, 왼발, 왼발에 한번씩 궤도를 이탈해 떨어져 나갔다. 이 도시에 오랜만에 비가 왔다. 체육관에 가는 길에는 흩뿌리며 그쳐가는 비였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한국 장대비에 버금가는 굵직한 빗줄기를 피할 수 없었다. 빗방울과 빗방울 사이의 거리, 사람과 사물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생각하게된 외출이었다. 이 도시에서 외출은 언제나 뭔가를 던진다. 나가기 전엔 귀찮지만 나갔다오면 도시가 던진 크고 작은 보따리에 비어있던 어딘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자전거 위에서 횡당보도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흑인 친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 자전거와 신호등 전봇대 사이의 거리는 2미터정도 됐을 것이다. 보행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 하나가 들어오기에는 애매한 거리다. 나도, 대부분의 사람도, 일상 생활 속에서 타인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출근길처럼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라면 가용한 전체 공간을 공간을 점유한 사람의 수로 일정하게 나누기라도 하는 것처럼 공간을 분할해 사용한다. 물론 그것도 정확히 맞는 얘긴 아니지만 각각의 공간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거리는 유지하는게 타인들 사이의 암묵적인 룰인건 분명하다. 


키크고 덩치큰 그 친구에 대해 쓰는건 굳이 내 자전거와 전봇대 사이의 2미터 속으로 비집고 들어와 섰기 때문이다. 나는 공간적으로 어색함을 감지했지만 모른척 했다. 그 친구는 크게 헤이! 라고 말했는데, 목소리가 꽤 커서 횡당보도 건너에 친구에게 말한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고개를 돌려 그 친구를 바라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를 바라보면서 주먹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주먹을 쥔 모양새가 다시한번 좀 어색했다. 나도 주먹을 내밀었고, 주먹과 내 주먹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진 끝에 집게와 검지 손가락의 뿌리뼈가 가볍게 맞닿았다. 신호가 들어왔고, 그 친구는 헤브어굿데이, 하면서 길을 건넜다. 유투. 


다시 멀어져가는 그 친구를 뒤로하고 체육관 정문에 다가가다보니 사람들이 보였다. YMCA 관장실에 항상  앉아있는 한 중년의 여자분이었다. 그분 외에 두명정도가 문 안쪽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나오는 모습을 보아하니 타이밍이 좀 멀었다. 내가 문을 열게될 타이밍과는 시간적으로 거리가 좀 있었다. 뒤따라 들어오거나 앞에서 다가오는 이들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는 작은 친절에도 거리의 가늠자가 늘작동한다. 몇걸음 떨어져 있지 않은 경우라면 늘 잡아주고 작은 인사를 주고받지만 오늘정도의 거리라면 그냥 모르척해도 무관한 그런 거리에 속한다. 애매한 경우라면 그날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오늘 그 여자분은 문을 천천히 열어젖히고, 열리는 문을 향해 그러니까 시계 반대방향으로 270도를 빙그르르 돌아서 열린문과 수평으로 서는 수고를 하셨다. 그래서 내가 가늠했던 타이밍이 어긋나는 대신 잘 맞아들어갔다. 나 역시도 걸음을 조금 재촉해서 보통보다는 빨리 다가갔기 때문이다. 빙그르르 돌아서는 그 분을 보면서 내 발걸음도 다 다 다 할것을 다다다다 했던 것이다. 고맙다며 문을 통과하고 바코드를 찍는 게이트에서 굿모닝 인사를 주고받고난 뒤에 체육관의 운동기구에 앉았다. 


비를 맞으면서 돌아오는 모자창에는 빗물이 진자처럼 시계추처럼 왔다갔다 한다. 좌 우로 한번씩 떨어져나가는 물방울은 굵직한 빗방울이 끊임없이 벌충해준다. 멀어지는게 있고, 다가오는게 있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의 놀라운 따뜻함을 대신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