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소로 Feb 03. 2024

나를 만드는 골목들

한번씩은 같은 카페를 갈때도 다른 골목을 통해서 가본다. 원래대로가면 자전거를 타고 쭉뻗은 도로를 큰길이 나올때까지 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큰길이 나오기 직전 오른편 골목으로 우회전을 해봤다. 골목이라고 하기엔 꽤나 넓은 도로였지만 그래도 큰길과는 다르다. 큰길이 큰길이라 불리는건 큰길에 걸맞게 차도 많고 큰 차도 많아서다. 골목은 대체로 큰길에 비해 한산하다. 똑같은 카페로 가는 여정이지만 어떤 길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것들이 있다. 좀 딱딱한것부터 말하자면 소요 시간이 길어지거나 짧아진다. 좀더 부드러운 면을 보자면 기분이 달라진다. 


어떤 골목은 기분좋은 도착을 향해있다. 또 어떤 골목은 삭막하기 그지없는 지친 도착으로 이어진다. 이번에 처음으로 달려본 골목은 전자에 해당했다. 이렇게 형식적이고 메마른 문단 전개과정과는 달리 키큰 나무와 넓고 여유로운 길이다. 이 길을 달리다보니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그리고 자전거 위에서 그 속담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속담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과정이야 어떻든 최종 목적지에만 도착하면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같은 목적지라도 그곳에 다다르는 길은 하나가 아니라는 말을 먼저 해야겠다. 예전엔 그걸 몰랐기 때문이다. 대체로 나는 목적을 이루기위한 유일한 하나의 길이 있다고 은연중에 믿으며 전전긍긍하며, 불안해하며 걸었다. 그때는 물론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다. 그 길을 이탈하면 도착은 물거품이 될거라는 믿음을 무의식중에 깔고서 불안속을 뚜벅뚜벅 통과하곤 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살아가는 목표를 향하가는 길 역시 우리집에서 알케미스트 카페로 가는 길 만큼이나 다양하다. 골목의 선택지를 모두 곱해서 경우의 수를 헤아려볼 것도 없다. 멀어지지 않는 방향으로 이어지는 두가지 분기점만 대여섯번 마주한다고 해도 50가지 이상의 길이 있으니까. 


과정으로서의 길은 도착한 시점의 우리를 만든다. 이번에도 한가지 전제를 먼저 언급해야할 것 같다. 우리는 시간에 따라서 계속해서 조금씩 달라져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변하지 않는 일정한 부분이 있겠지만 변하는 부분또한 그에 못지않게 많은 느낌이다. 큰길을 통해 트럭과 승용차와 아슬아슬한 간격을 유지하며 영화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스릴있는 라이딩으로 도착한 카페에 선 내가 있다. 그리고 한산하고 널찍한, 키큰 가로수가 줄지어선 골목을 천천히 지나 도착한 카페에 선 내가 있다. 표정도, 기분도, 에너지도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다. 


표정과 기분과 에너지처럼,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들을 예전에는 지나치게 가볍게 봤었다. 자아라던가, 정체성이라던가, 본질이라던가, 하는 근원적이고 단단한, 시간을 이겨내는 추상적인 것들의 묵직함에 눌려있었기 때문이다. 눌려있었다기보다 나 스스로가 그런 무게를 우러러보며 지탱했다. 하지만 진짜 나를 구성하는게 뭔지 물어보면 꼭 묵직한 불변의 것들만으로는 답할 수 없다. 오히려 그때그때 변하는 기분과 컨디션이 그런 변화의 축적이 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내가 평온하다면 오늘중에는 대체로 평온함이 이어지는게 나라고 할 수 있는 한편, 다른 누군가는 지금의 평온함이 하루에도 몇번씩 엎치락 뒤치락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똑같은 카페에 가는 길이라도 어떤 골목을 선택하느냐는 나름 중요한 일이다. 그렇게 별것아닌 선택 역시 나를 만들어내는 재료들중 하나가 될테니까. 사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도 된다는 말은, 빙 둘러가더라도 목적지에 도착만 하면 된다는 의미다. 오늘 자전거 위에서처럼 그렇게 비판적으로 볼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의 내가 읽은 이 속담은 비판받을만 했다. 내일 읽는 이 속담은 또 달라지겠지만. 

작가의 이전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정거리와 친절한 침범자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