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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Jan 09. 2024

흔치않은 욕설사용 메뉴얼

*상스런 욕설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영을 마치고나면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리된 형태로 찾아온다. 마치 택배처럼 반듯한 상자에 포장되어 문앞에 놓여져있다. 아이폰 메모앱을 열어 '오늘' 폴더에 새 메모를 만들고 그 생각들을 음성인식으로 기록해둔다. 오늘의 메모 -- 건물을 디자인하다 막힐때는 일견 쓸데없어보이는 배경의 요소들로 물러나기,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들을 다루자는 내용이었다. '어떤 대상의 주변을 그림으로써 그것을 그리는 것' - 정확히는 이렇게 메모했다. 또 하나는 나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런게 때로는 필요하다는 메모다. 


바로 이 문장을 음성으로 옮길때 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계단이 없는곳에 발을 디디는듯한 착각이 들어서 휘청했다. 나도 모르게 - 아 ㅅㅂ - 라는 단말마의 욕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메모장을 보니 그 욕이 고스란히 문자로 옮겨져 있었다. 나 자신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그런게 때로는 (몇칸 더 띄우고) 아 씹할. 시발도 아니고 씨발도 아니고 씹할. 이 노트를 보자마자 나는 중학교 시절 역사담당 담임선생님의 한 수업 속으로 돌아갔다. 진녹색 칠판에는 씹할이라는 두글자가 분필 궁서체로 쓰여져 있었다. 국사시간에 어울리는 주제는 아니었다. 선생님은 씨발이라는 욕의 어원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그 외에도 사람들이 대체로 상스럽게 여기는, 아니 매우 상스럽게 여기는 욕들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짧은 사설이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중학생들이 입에 달고사는 말들의 뿌리가 이렇게 적나라하게, 그것도 점잖은 선생님의 입을 통해 밝혀진 탓에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씨발의 정확한 뿌리는 씹할이다. 씹은 성행위의 비속어에 해당한다. 씨발은 그 자체로도 쓰이고, 씨발놈이나 씨발년으로도 쓰인다. 좀더 쉬운 명사형부터 의미를 풀어 생각해보면 성행위나 할 남성, 혹은 성행위나 할 여성이라는 뜻이 된다. 놈이나 년을 떼어내고 씨발만 놓고본다면 성행위나 할, 이라고 특별히 완결되지 않는 의미의 단어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욕설에는 성행위를 저속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단적으로 책볼놈이나 책볼년같은 말이 욕설로 쓰이지 않는다는걸 생각하면 이런 전제가 명확해진다. 


이렇게 어원을 따라가다보면 영어 비속어의 강도에 있어 비등한 위치를 차지하는 Fuck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다. 저속하게 내뱉는 가장 흔한 비속어가 영어권이든 우리 나라든 의미상으로는 동일하다. Fuck은 씨발에 해당하고, Fucker는 씨발놈에 해당하며, 단어의 형태는 바뀌지만 Bitch는 창녀의 의미이므로 씨발년에 간접적으로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여기까지 했다면 기억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걸음 더 들어가셨다. 욕설이 모두 그렇긴 하지만 정말로 왠만해선 쓰지 말아야할 씹할의 극적 변주 역시 다뤄졌다. 


Son of a bitch, 물론 영어의 체계 속에서는 더없이 저속한 표현이지만, 이에 대응되는 우리말에 비하면 한결 그 상스러움의 정도가 약하게 들린다. 여기 대응되는 우리말은 '니미 씹할'일텐데, 여기서부터는 정말로 입에 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교실에 있는 우리들은 다들 그 의미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었다. 이 사설의 결론이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마도, 선생님은 욕을 하더라도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하라는 얘기를 하셨던 것 같다. 우선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정말로 그런 욕이 필요할 경우에는 사용하라는 일종의 흔치않은 욕설사용 메뉴얼이었던 것이다. 


욕설만큼 듣기 거북할지도 모를 자랑이지만, 선생님은 국사시간에 제출한 내 기행문 과제를 극찬하신적이 있다. 중학생이 대학생 수준의 리포트를 썼다며 수업시간에 공개적으로 얼굴이 빨게지도록. (글 실력은 그때 이후로 멈춘건가.) 그리고 몇년이 지나 고등학교에 갔을때 한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멀찍이서 선생님을 발견했다. 나 역시 발각됐다는건 몰랐다. 나는 반사적으로 모른척을 했는데,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아주 전형적으로 깊은 사춘기를 맞은 내성적인 학생이었기 때문이라는 표면적인 이유밖에는 댈 수 없다. 선생님은 그 횡단보도에서도 모르는척 지나가려는 나에게 다가와 왜 모른척하노 임마, 하면서 웃으며 말을 거셨다. 내 글 실력은 대학생 수준에서 멈춰버린지 몰라도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영원할 것처럼 이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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