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소로 Jan 07. 2024

굳이 제목까지 필요하진 않은 글

오랜만의 새벽이다. 다섯시가 되기 전에 일어나 앉았다. 오랜만에 요가매트를 펼쳐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LA도 겨울 새벽에는 기온이 9도까지 떨어진다. 두꺼운 츄리닝을 입고서 앉았더니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얇은 파자마로 갈아입은 뒤에는 한결 편안해졌다. 전기 밥솥을 바라보니 보온 모드에 들어간지 10시간이 넘어있었다. 어젠 일찍 잠자리에 들어서 저녁으로 지었던 현미밥을 한술도 뜨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 아침엔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분다. 창밖에 대나무 입사귀의 그림자가 한참전부터 어지럽게 흔들린다. 길 맞은편 가로등에 비쳐 생긴 그림자가 흰색 조명바탕 속에서 수묵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움직이는 수묵화다. 그리고 종이가 아닌 찬 유리창 위에 그려진 수묵화다. 또한 시간이 지나 아침해가 뜨고나면 금새 사라질 수묵화다. 모든게 시간에 갖혀있다. 저렇게 바람에 따라 출렁이는듯 춤추는듯 움직이는건 알고보면 시간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해뜨기전인 탓인지 새벽감성이 그림자만큼 출렁인다. 


문득 지금이 한때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낮의 생각이니 이건 새벽감성 탓은 아닐 것이다. 하루를 돌아보면 아침에 자고싶은 만큼 자고 일어난다. 책이나 신문기사를 읽고 메모를 남긴다. 짧은 글을 쓴다. 컴퓨터를 켜서 건물 디자인을 이어나간다. 중간중간 뜨거운 커피나 차를 마신다. 배가 고프면 간단히 계란찜같은걸 만들어 밥을 먹는다. 한번씩 체육관에 가서 수영이나 가벼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이런 생활은 물론 일을 구할때까지만일 것이다. 나도 시간에 갖힌 많은 것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아니 경험에 비추어 확언하건데, 내가 하게될 일이 원하는 일에 가까운 일일수록 일을 하면서 바라는 휴식과 자유시간에 대한 열망도 커질 것이다. 자유와 휴식을 바라는 마음은 하고싶은 일이 주는 배움과 만족감과는 별개다. 아무리 하고싶은 일을해도 휴식은 필요하다. 지금 일을 구하고 싶은 마음만큼 그때는 휴식을 구할 것이다. 그러니까 언젠가 간절해질 휴식과 자유를 지금은 가지고 있다는 걸 기억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누리는게 좋겠다. 또한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 일이 간절했던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는게 좋겠다. 그리고 누리는게 좋겠다. 우산장수와 부채장수를 자식으로둔 부모님의 지혜같은 것이다. 


선우정아나 윤종신, 김동률처럼 음악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보면 아무런 연이 없는데도 뭔지모를 힘이 된다. 우리는 약속된 어디론가 함께 걸어가는 동행도 아니고, 그 무엇도 아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어디론가 계속해서 걸어가는 모습을 음악으로 확인하는 것 만으로 나도 내가 갈길을 계속 가게된다. 사실 단정형 어미로는 내가 느끼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겠다. - 가야만 할 것 같다. 가기위한 힘이 난다. 가는게 맞다는 확신이 든다. 한걸음 다시 뗄수 있다. - 등등을 모두 합쳐놓은 어미를 새로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의무와 영감과 확신과 가능성을 담은 종결어미 말이다. 의미를 분절하는게 아니라 통합하는 종결어미 말이다. 


창밖에 비친 대나무 그림자의 움직임이 한결 잠잠해졌다. 그림자의 모습을 통해서 읽는건 바람의 움직임이다. 누가 그런말을 했던것 같다. 허브차 티백을 세번째 우려먹는 중이다. 뜨거운 물이 추운 날씨에는 금새 식는다. 따뜻한 차를 겨울들어 많이 마시게 된다. 뜨거운 차가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준다는걸 예전에는 몰랐다. 털모자를 한번씩 쓰기도 한다. 추운날엔 머리가 춥기도 하고, 머리를 따뜻하게 하면 온몸이 따뜻해지기도 한다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이렇게 당연한걸 배워간다. 대나무 그림자가 다시 살랑인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작가의 이전글 뉴스 몇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