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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Jan 06. 2024

뉴스 몇

몇가지 뉴스와 몇가지 개인적인 생각이 있다. 

지난 1월 2일, 하버드 대학교의 첫 흑인 총장 클로딘 게이 (Claudine Gay)가 취임 6개월만에 사임했다. 클로딘은 아이티계 미국인이다. 수년전 지진 피해로 많이 알려진 그 아이티다. 사임을 부른 논란의 직접적인 발단은 미 의회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관련 질의에 대한 클로딘의 답변이었다. 한 의원이 하버드 캠퍼스에서 이스라엘인의 집단학살을 주장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의 발언은 하버드의 학칙위반으로 처벌 대상이 되는지 물었다. 클로딘은 '그럴 수 있다'는 수준의 답을 했다. 그리고 그 답변이 충분히 명확하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논란의 불씨가 됐다. '발언이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 학칙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클로딘을 옹호할 수도 비난할 수도 있다. 한 문단으로 정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사안이다. 원칙적으론 답이 명확하지만 미국의 현실 정치속에서의 반유대주의나, 교육기관의 윤리와 규칙에 대한 옳고 그름을 여기서 단번에 따지긴 어렵다. 다만, 순수하게 개인적인 삶에 주목해봤을때 누군가의 연말과 새해 첫날은 그렇게나 무거웠던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마음을 울리는 문장들이 담겨있다. 작년 연말에 산 단편소설집을 어제까지 고작 두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렇게 천천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작가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한번에 책을 다 읽기보다 천천히 한편씩 읽어주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모범 독자다. 어제 읽은 두번째 단편의 제목은 '난주의 바다'였다. 세상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라는 의미의 문장이 44페이지에 나온다. 얻어맞고 쓰러져봐야 내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다는 문장은 60페이지에 나온다. 둘 모두 공감이 간다. 세상은 정직하게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여겨왔고, 늘 그 거울을 바라봄으로써 나를 돌아보고 마음의 방향을 조정해왔다. 또한 내가 진짜 어떤 인간인지 알기위해 얻어맞고 쓰러져보는 중이다. 어찌보면 김연수 작가의 이 책이 나에게는 세상이라는 거울의 한 조각인 셈이다. 지금 내 모습을 문장의 형태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성공을 위한 열정과 불굴의 노력을 얘기해온 사람은 늘 있었다. 반대로 이 시대의 특징이라면 성공보다 자기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을 즐기는 태도를 우선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최고가 아니라도 괜찮다'거나 '감사할 일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문구가 이런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자기 위안이나 비겁한 타협이라는 비판도 있을 수 있고, 달리보면 이런게 진정한 삶의 본질을 잃지않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둘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최고가 아니라도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어야만, 그리고 감사할 일에는 충분히 감사해야만 길이 이어져 나갈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굳이 그렇게 소극적으로 둘러대지 않아도 충분하다. 최고가 아니라도 괜찮다. 정말로 그렇다. 잊고있는 감사할 일들이 많다. 실제로 그렇다. 


지난 5월부터 글을 매일 써왔지만 이제 루틴을 바꿔야 하지않나 고민중이다. 하루에 한편쓰는 글에 한계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게 첫번째 이유고, 우물의 물이 충분히 차기도 전에 물을 퍼내는 느낌이라는게 두번째 이유다. 우물은 너무 오래된 비유다. 좀 더럽지만 변기로 바꾸자면 물이 다 차오르기전에 물을 내려 콸콸콸 내려가야할게 졸졸졸 내려가는 사태와 같다. 말하자면 나에대한 착취인지도 모르겠다. 또 나에게 그만한 재능이 있다면 이런 작업량도 발전적으로 소화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그렇지 못하다. 혹은 작업량을 그렇게 조절해야 더 피어나는 재능도 있을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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