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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Feb 11. 2024

안타깝게도 나에게만 유용한
시간과 손잡는 방법

급하게 나오느라 열쇠도, 핸드폰도 방에두고 문을 잡가버렸다. 이렇게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 안에서 잠기는 문이라 낭패였다. 폰 없이는 자전거도 빌릴 수 없고, 체육관에 체크인 할수도 없다. 키 없이는 대문을 열수도, 방문을 열수도 없다. 대문을 나간 뒤에야 빠뜨린게 생각났던 탓에 높은 쇠창살 담을 넘어서 다시 들어와야 했다. 옆집분에게 부탁해 주인집에 전화를 드려 확인해보니 문을 열려면 한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그래서 주말의 수영은 물건너가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거리를 달리기로 했다. 이 동네에 이사온 뒤에는 처음으로 거리를 달리는 것이었다. 


바보처럼 중요한걸 다 까먹고 급하게 나온건 집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다가 수영장 예약시간에 늦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작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 지지부진 착잡한 마음으로 매달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똑같은 작업이라도 작업을 하는 마음과 작업의 성격에 따라서 시간이 달리간다. 오늘같은 경우는 시간과 등지고 시간을 적으로 만드는 쪽이었다. 시간을 내편으로 만드는건 중요한 일이다. 시간과 손잡고 함께하는 삶이라야 나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말은 시간과 한편이 되기위해서는 얼마만큼의 휴식이 필요한지 알아간다는 의미다. 분명히 정의하긴 어렵지만 '내가 나답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알아가는 일이다. 사실 그건 아주 사소한 것들일때가 많다. 한주에 한번정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단편 소설집의 단편 한편정도를 읽는다거나 하는 일들처럼 말이다. 일주일에 하루 휴식하고 일을 시작하는 나와, 이틀 휴식하고 일을 시작하는 나는 많이 다르다. 하루 휴식한 뒤의 나는 오늘처럼 초초하고, 시간과 등진채 나아간다. 이틀 휴식한 뒤에는 시간과 동료가 되어 같이 걷는다. 


일주일에 적정 선의 휴식을 하고, 일하는 날 동안은 내가 몸담은 디자인 분야에 있어 하루에 딱 한걸음씩이라도 나아가는 삶. 그리고 다시 맞는 휴일에는 커피 한잔과 길거리를 멍하니 쳐다보는 한두시간을 갖는것으로 완전에 가까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일상적인 행복의 조건들을 발굴해나간다. 조급한 마음에 문이 잠겨버린 탓에 거리를 달렸다. 달리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오늘을 온전히 휴식하기로 마음먹는다. 뛰면서 돌아보는 작업문서는 그렇게 끙끙대며 고민고민할 일이 아니었다. 페이지 수를 억지로 억지로 줄이기보다 보여주고 싶은건 시원하게 다 보여줘도 될 일이었다. 아끼는게 때로는 독이된다. 돈도, 페이지도 마찬가지다. 


처음으로 달리는 거리는 생각보다 달릴만한 풍경이었다. 내가 읽을줄 모르는 이름의 프랑스계 학교인듯한 건물들, 로욜라 로스쿨, 그러다가 한번씩은 다시 노숙자들의 작은 텐트들이 줄지어 이어지기도 하고, 구글 픽셀 광고판, 다시 골목으로 들어가면 숲처럼 조성된 멋들어진 마당정원에 파묻혀 보일듯말듯 테이블위의 그림에 집중하는 곱슬머리 단발의 청년, 지나치면서 봤을땐 멋지지만 막상 달려지나보니 별볼일없던 작은 샛길... 지금까지 듬성듬성 목격했던 눈에익은 건물들을 이정표삼아서 달리다보니 한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때는 도롯가에서 스쿼트를 하고, 담장에 기대 팔굽혀펴기도 했으니 신호대기중인 운전자에겐 꽤나 낯선 모습의 남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운동하며 몸을 움직이는건 그러나, 평소에는 얽매여 탈출하기 어려운 타인의 눈길도 그저 타인의 눈길 정도로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게해준다. 여태껏 밟은적 없는 길을 통해 늘 지내는 집으로 돌아와보니 담장 너머로 주인 아주머니가 문을 열어놓았다며 대문까지 열어주셨다. 나는 주말에 번거로운 걸음을 하게한게 죄송해 블루베리 티 박스를 건냈다. 방에 티 박스를 쟁여놓는 것도 내가 알아가는 나의 일부다. 작업하면서 마치 작업의 연료처럼 티를 마셔대는, 마셔대면 작업이 더 순조로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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