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내용없음 유의/
밤 열두시 이십팔분. 오늘은 오랜만에 글을 한편 써보자고 종일 생각했었다. 만두에 대해서. 아침부터. 그러나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건 이미 내일이 된 지금에서야다. 내일이 됐으니만큼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시작을 해보고 싶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해보자. 만두를 먹으면서 울어본적이 있는가.
만두 먹으면서 울어본적 있는가 하는 문장은 고백의 문장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렇기 않다. 꺼내놓는 문장이 아니라 던지는 문장이다. 소프트볼 선수가 팔을 고개 뒷편으로 한번 윙 돌려서 던지는, 땅속에서 솟구치듯 넌지시 용솟음치는 그런 물음의 문장이다. 물음의 문장. 용솟음은 사실 적절치 않은 수식어였지만 중요한건 그게 아니다.
만두를 먹으면서 울어본적 있는가. 아마 내가 그래본적이 있었다면 글은 생각보다 더 진부해졌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본적이 없다. 그래본적이 없는데 왜 물어보는가 그게 두번째 의문이다. 세번째 의문은 그래본적이 없는걸 그래본것처럼 묻는일에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가. 네번째 질문은 글이 도대체 어디를 향해가고 있는가. 다섯번째 질문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럴거면 만두처럼 부들부들하고 국물 낙낙한 만두이야기는 왜 꺼낸건가.
다섯가지 질문들 모두 당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라는데 공통점이 있다. 하나 분명한것, 지금 말할 수 있는건 이번 문단은 여섯줄까지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늘 이런게 궁금했다. 내가 그러기로 마음먹은것은 어떤 성격의 사건인걸까. 마음을 먹은건 아직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럼 마음을 먹었다는건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하기 위한 준비과정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 마음을 쓰고 생각을 하는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일견 무의미한 질문들을 던지다보니 어느새 문장은 여섯째 문장으로 접어들었다.
만두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 어떤 갈피도 잡히지 않는 이런 문장들을 굳이 힘들여 온라인 공간속에 밀어넣을 수 있는건 그 나름의 탄탄한 기반이 있어서다. 아무 말이나, 그게 어떤 말이라도, 얼마나 무의미한지와 무관하게 자판을 두드리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는 것으로 탄탄한 기반이 만들어졌고, 그런 기반에 기대어 만두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않지만 만두로 시작하는 글 한편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글의 맨 앞단에 흔하진 않은 경고문 하나를 추가해야 양심상 편안하겠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별 내용이 없으니 주의하라는 경고문. 내용없음이라거나 제목없음과 같은류의 간단명료한 경고문구.
이 글은 속이 비었지만 만두는 그렇지 않다. 특히 요즘들어 내 평일 점심과 주말 대부분의 식사를 함께하는 두루두루 씨제이 만두는 속이 꽉 차있다. 그게 냉동만두가 맞나 싶을정도로 충격적으로 속이 꽉꽉 차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양배추인듯한 야채 고명이, 생생한 식감을 뽑내는 고명'들'이, 몇개인지 헤아리는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을만큼의 수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그 만두를 대여섯개, 올리브유를 한바퀴 후룩, 자연재료로 만들어 조미료임에도 조미료 답지않은 다신맛을 잘아하는 청정원 맛선생 가루를 반숫갈, 국간장을 한스푼, 날계란을 하나깨어 넣고, 때로는 두부도 서너덩이 넣고, 뜨거운 정수기물을 계영배에 술을 따르듯 팔부정도 담아내서 전자레인지에 삼분가량 돌리면 만둣국이 완성된다. 눈물이 날만큼 만두국다운 만두국. 그러나 아직 정말로 울어본적은 없는 그런 만두국. 광고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글의 서두와 후미를 장식하는 만두국. 만두에서 시작해 만두국으로 끝나는 그런 글. 그런 만두가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