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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Mar 11. 2024

써머타임 첫날의
만두세일과 건축리뷰

거실의 시계는 낮 열두시를 지나고 있었다. 내 손목시계는 한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써머타임이 시작됐다. 시작된게 있다면 끝난것도 있다. 비비고 두루두루 만두의 장기 세일이 막을 내렸다. 3.99달러라고 붙어있던 피켓이 사라져있었다. 피켓의 소멸도 상실이라면 상실이다. 만두 한품목의 가격 상승에 따른 상실감이 있다. 그리고 써머타임으로 인해 하룻밤에 증발해버린 한시간에 대한 상실감이 있다. 두가지 상실감을 비교해보면 어떨까. 두루두루 만두의 원가를 알수 없기 때문에 두 상실감 사이의 엄밀한 비교가 쉽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비교를 하는 대신 상실의 범주를 좀더 넓혀보자. 범주를 넓히다보면 어딘가에서 비교가 가능한 지점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를 일이다. 


어제 아주 오랜만에 건축 리뷰를 쓰려다 마음을 접었다. 서울 건축리뷰라는 매거진에 서울의 건축물이나 서울에서 일어나는 주요 공공건축 설계 공모의 결과를 리뷰해왔는데 손을 놓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다가 최근에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을 새롭게 짓는 프로젝트가 작년에 있었다는 소식을 듣게됐다. 당선작은 이미 지난 12월에 발표가 이뤄졌다는 것 역시. 다만 내가 관심을 갖게된 공모안은 1등작도 아니고 2등작도 아니고 3등작도 아닌, 또한 가작 1안도 아닌 가작 2안이었다. 그러니까 순위안에는 들었다고 볼 수 있는 안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낮은 등수를 차지한 안이다. 


건축공방과 그 밖의 두 설계스튜디오가 협업해서 만든 이 설계안은 두가지 핵심 모티브를 품고있다. 하나는 미스 반 데 로어의 정사각형 그리드를 사용한 건물의 플랜이고, 두번째는 건물과 주변의 환경이 만나는 경계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뉴욕의 하이라인에 적용된 핑거 조인트 (양손 손가락이 번갈아 맞물려 깍지킨 모양새)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이라인 설계는 뉴욕에 오피스를 두고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딜러 스코피디오 렌프로 (DSR New York)가 맡았다. 베를린 내셔널 갤러리의 정사각형 지붕을 설계한 미스 반데로어와 DSR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이 연관성을 찾는게 첫문단에서 하려다 포기한 두 상실감 사이의 비교보다는 쉬워보인다. 


미스 Mies 와 DSR은 모두 모더니즘 건축을 디자인의 뿌리로 삼고있다. 아주 단순화해 말하자면 유리로된 커튼월로 둘러싸인 빌딩의 미학을 추구한다고도 할 수 있다. 미스는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였다. DSR은 동시대 건축 스튜디오로서 반듯한 유리박스형태 이외의 다양한 형태의 건물을 지어왔지만 유리벽이 지닌 모던함에 천착하는 모습이 포트폴리오에 잘 드러난다. 단, DSR은 요즘 사람들 답게 이 투명함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시키는 실험을 몇차례 선보였다. 대표적인게 1999년 뉴욕의 Brasserie, 그리고 2015년경 진행한 샌프란 시스코의 Facsimile다. 


브라세리는 한술집 내부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손님들의 모습을 내부에서 볼 수 있게한 프로젝트다. 팩시밀리는 거대한 빌딩 외벽에 거대한 스크린을 하나 달아서 좌우로 움직이면서 빌딩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빌딩 밖 거리에서도 훤히 볼수있게 노출시킨 프로젝트다. 둘의 공통점은 내부와 외부 사이의 연결에 있다. 모더니즘 건축에서는 단순히 유리라는 투명한 재료를 통해서 달성했던 것을, DSR은 디지털 카메라와 스크린이라는 장치를 활용해서 구현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외부와 내부의 분리와 연결은 건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테마중 하나였다. 건물을 짓는다는건 필연적으로 어떤 두 영역 사이를 분리시키는 행위다. 아니 벽을 세워서 두 공간을 분리시키는 마당에 연결을 논하는건 무슨 역설인가? 하고 물음을 던질 수도 있다. 

Brasserie // Facsimile


하지만 단절이 있기 때문에 연결에 대한 질문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어진다. 두 공간 사이에 경계가 아예 전무하다면 연결이라는 개념은 그 개념 자체도 성립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두 영역을 '나누면서도' 어떻게 '이을것인가?' 미스를 비롯한 다른 모더니스트 건축가들의 답은 유리벽이라는 재료에 있었다. DSR은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카메라와 스크린을 활용한 연결을 제안했다. 두 영역의 단절과 연결이라는 주제는 방과 방 사이를 넘어서 좀더 큰 범주에서도 중요하다. 예를들어, 빌딩의 영역은 어디에서 끝나고 자연의 영역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보통 빌딩의 외벽이 안과 밖을 나눈다는 답으로 끝낼 수 있는 질문 같지만 우리 주변의 빌딩들을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빌딩은 물론 유리벽이든 콘크리트 벽이든 벽을 경계로 안과 밖이 나눠지지만 지상에서는 빌딩의 영역이 도시 외부로 항상 확장되게 되어있다. 빌딩을 나왔을때 그 빌딩의 주변부를 정의하는 특정한 디자인의 블럭이 바닥에 깔려있고, 그게 끝나는 지점에서 일반적인 도시의 보행자 블럭이 시작된다. 보통은 그 경계가 아주 명확해서 하나의 직선이나 곡선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까진 이 빌딩의 영역, 그 밖은 도시의 공공공간 혹은 사방이 뻥 뚤린 하늘아래의 자연, 그런식이다. 


하이라인의 핑거 조인트 디자인이 담고있는게 그러한 경계의 의도적 모호함이다. 두 손바닥을 마주한 상태에서는 왼손과 오른손의 경계가 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명확하지만, 깍지를 낀 상태에서는 경계를 어디에 둬야할지 모호해진다. 왼손의 일부가 오른손에 둘러쌓이고, 오른손의 일부는 왼손에 둘러쌓인다. 애매하지만  따뜻하다. 겨울이라면 시린 손이 녹을만큼, 여름이라면 땀이 삐질 날 정도로 따뜻할 것이다. 건축공방 외 두 스튜디오의 작품을 보면 전시장 건물의 지면이 끝나는 지점에서 자연의 공간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이런 깍지낀 손가락처럼 엇갈리며 맞물려있다. 

Highline, fingerjoint

정리해보면, 단절된 두 공간 사이를 잇기위한 세가지 방식이 제시된 셈이다. 첫번째는 유리벽을 통한 연결 - 단 이 연결은 물리적 연결이아닌 시각적 연결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두번재는 디지털 카메라와 스크린을 통한 연결 - 역시 시각적 연결이지만 기술적으로 안밖의 경계가 더 극적으로 무너지는 효과를 갖는다. 세번째는 깍지낀 손가락식 연결. 이건 시각적 연결을 넘어서 물리적인 경계를 허무는 방식이다. 글을 마치며 두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첫번째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굳이 경계를 허물고 연결하려는 이유가 뭘까? 두번째는 좀더 협소한 관점에서, 미스와 DSR의 디자인이 한눈에 드러나는 설계안은 표절인가? 첫번째에 답하기 위해선 깍지낀 손가락이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두번째에 답하기 위해선 창조가 일어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꼭 여기서 답을 내릴 필요는 없는 질문들이 아닐까. 그게 세번째 질문이다. 



#Reference.

광주 비엔날레 설계공모 결과

http://www.gj-biennale.org/bbs/board.php?bo_table=notice&wr_id=18

DSR 프로젝트

https://dsrny.com/project/facsimile

https://dsrny.com/project/brasserie

https://dsrny.com/project/the-high-line

베를린 내셔널 갤러리

http://architecture-history.org/architects/architects/MIES%20VAN%20DER%20ROHE/objects/1968,%20Neue%20Nationalgalerie,%20Berlin,%20German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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