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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Mar 24. 2024

양배추 양송이 브로콜리
소보루 피자빵 같은야채

캠퍼스. 그래 캠퍼스. 캠퍼스는 활력이 넘친다. 캠퍼스는 활력이 넘친다는게 너무 진부하지만 진부하디 진부할만큼 그만큼 활력이 넘치는걸 어쩔수가 없다. 여기까지 쓴 문장들에 스민 얼룩덜룩한 어둠을 다 털어내고도 바싹 바짝 뽀쏭 말리고도 남을만큼 햇볕이 내리쬐며 밝은 캠퍼스였다. 밝은건 햇볕인데 빛나는건 볕아래를 걷는 사람들이다. 학생들, 남학생들, 여학생들, 백인들, 아시아인들, 흑인들, 라틴사람들, 인종이라는 작은 틀로 가둘수 없는 사람들. 


싸움이라는 쌍시옷 품은 단어로 두번째 문단의 출발을 장식하는게 누군가에게 미안하단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싸움이다. 싸움. 어떤 싸움을 선택하느냐 하는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다. 누군지 몰라도 누군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걸 감수하면서도 두번째 문단은 그것으로 시작할만큼 중요한 문제는 중요한 문제다. 여러가지 싸움을 한다. 나와의 싸움, 남과의 싸움, 자연과의 싸움. 참을성의 싸움, 속도의 싸움, 파도와의 싸움, 기다리는 싸움, 앞지르려는 싸움, 기타 등등. 


나에게 다가오는 싸움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겁먹지 말자는 싸움의 기술 제 1장을 마치고 나면 2장이 나타난다. 화가 쌓이고 쌓여서인지, 아니면 1장을 마쳐서인지 분명히는 모르겠으나, 이제 어떤 싸움이든 닥치는데로 죽이되든 밥이되는 성이 잔뜩나서 총을 뽑아들 그런 상태가 되고나면 거기서부터는 어떤 - 어떤 싸움이냐가 핵심이 되기 시작한다. 싸움을 피하지 않을 수 있게되면 세계는 거기서 아 축하축하 추카추카 이제 미션 클리어, 하산하세요, 하는 대신 이제 어떤 싸움을 할지 선택지를 주어주며 다음 스테이지의 막을 슬며시 올려준다. 관대한 세상이여. 관대한 세상이야. 관대한 세상이자식아.  


애초에 4문단부터 시작을 했어야 하는데 장장 세문단에 걸쳐서 말도 안되는 소리만 잔뜩 쓰고말았다. 이렇게 힘이 다 빠지고 나면, 다 탈탈 털털털리고 나면 거기서부터 이제 진짜 시작합니다 하고 아주 상냥하게 안내방송이 나온다. 자 이제 시작이다. 이제부터다. 창밖에서 길거리 파티를 하면서 떠드는 친구들과 한번더 전쟁을 하느냐, 그 싸움은 잠시 접어두고 자전거를 타고 USC 캠퍼스쪽으로 오랜만에 바람을 쐬러 나가느냐. 결국 USC쪽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는건 싸움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글 전체가 싸움의 문제로 일갈할 수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으나 그런 일이야 살다보면 파다하다. 아 여기가 아니었네. 그럼 돌아가면 된다. 


이제부터 글의 주제는 어떤 싸움이냐를 선택하는 삶이 아니라, 싸움이냐 싸움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하느냐다. 싸움에 이골이 나도록 오는싸움을 피하지 않고 참전하다보면, 삶은 곧 전쟁이라는 등식이 성립이라도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살게된다. 아니 생각도 안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나를 어디 넷플릭스 쇼 바라보듯이 그냥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지금 눈앞을 가득 채우는 싸움이라도 잠시 잠깐 스톱, 고개를 돌려서 세계의 다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게 그 다음 미션. 이강인 선수가 시선을 돌려 방향을 전환하는 횡패스를 멀리 때리듯이 그렇게 시야를 전환하는게 다음 미션 되겠다. 


그렇게 치면 나는 오늘 그런 방향전환 패스를 썩 잘 해낸 셈이되고, 내 자랑하는 글이 되고마는 셈인데, 그래도 되려나. 그러고 싶지는 않으므로 이 시점에서 작지만 그래도 방향을 전환하는 킥을 한번 시도해보자. 무전 취식이면 괜찮은 킥이 되지 않겠나. 그렇다, 오늘 무전 취식을 했다. 뭣 모르고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둘러대기에는 나는 너무나 어른 어른이다. 거의 어르신이니까. 그렇든 저렇든 오늘의 나는 무전취식으로 일갈할만큼 어리둥절한 범법자였던 것이다. 태양은 내려쬐고, 평화는 평화롭고, 대학생들은 활기차고, 두툼한 고기는 부드럽고 짭조름하게 맛이 기가 막혔다. 어떻게 구웠는지 누런색의 양배추도 아니고 양송이도 아니고 브로콜리도 아니고 소보루 빵도 아닌 그 네가지의 중간지점 어딘가인 야채같은 뭔가, 표면에 피자가 노릇노릇한 구운 흔적이 있는 그 구운 채소도 기가 막혔다. 


무전취식. 싸움대신 선택한 바로 그 무전취식. 그리고 신문 기사들을 읽는다. 나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잭 머피. 그 편집자에게 표창처럼 날카롭게 벼려서 클릭해날릴 메일을 준비한다. 로스앤젤레스에 2025년에 개관할 루카스 (바로 그 조지 루카스) 뮤지엄으로 운을 띄워서, 결국은 미술관 건축이 달라져야 한다는 그 논지를 한눈에 빡 알아볼 수 있게, 길어도 다섯줄에서 일곱줄 이내로 마무리해야할 그런 메일. 그것을 준비한다. 준비했다. 무전취식을 하면서 준비했던가. 달라진 미술관 건축 속에서는 무전취식도 가능하면 꽤나 좋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물론 표창처럼 벼려서 날릴 이메일에 무전취식 이야기는 제외다. 노릇노릇한 이야기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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