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초코파이를 먹는다.
3일전부터 허리통증에 시달리던 한 남성은 초코 파이를 구입했다. 12개입 한박스에 4.99달러지만 세일 덕분에 2.99달러에 구매할 수 있었다. 2달러의 가격 인하를 위해서 몇주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몇주동안 초코파이를 품고있던 마음이 따뜻했다. 그리고 오늘, 한인마트 과자류 코너의 선반 끄트머리에 진열된 수십통의 초코파이를 발견했다. 진열된 박스들 위로 흰바탕에 빨간색 테두리 속, 인하된 가격 "2.99"가 적힌 안내판을 발견했다. 따뜻하던 마음이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자기도 모르게 아,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던건 그 반가움 때문이었다.
두번째 초코파이를 먹는다.
초코파이는 LA에 분포된 대부분의 한인마트에서 과자코너 한쪽 끝 가시성이 가장 좋은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선반 1층은 건너뛰고 2층에서 3, 4층정도 높이의, 직립보행하는 성인의 시야각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범주속에 위치한다. 나아가 선반의 가장 끝부분은 선반 사이에 진열된 과자들에 비해서 훨씬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의 눈에 띠는 위치다. 초코파이 진열방식에 대한 이 두가지 분석은 초코파이의 매출 우위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좋은 위치에 진열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잘 팔린다는 증거다. 혹은 제조사측에서 마트쪽에 광고비 명목의 비용을 지불했다는 증거다. 좋은곳에 진열되면 그만큼 더 노출되고,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보통 12개의 초코파이가 한 박스에 포장되어 판매된다. 집으로 돌아온 초코파이 구매자는 구매한 초코파이를 먹었다. 여기서부터가 광고다. 세개째 연달아 먹는다. 우유와 함께 먹었다. 외출할 때만 입는 까만색 니트를 입고 먹었다. 침대에 반쯤 걸터 엎드려 먹었다.
1-1. 세개 연달아, 우유와 함께 먹었다. 초코파이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 하지만 우유와 함께 먹는 초코파이는 식품류의 정체성을 초월해서 하나의 개념적인 상징이 된다. 달콤함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혀가 느끼는 몇가지 맛중 하나를 일컫는 단어로서, 실제로 미각에 단맛을 전달하는 존재하는 식품들에 의존해 존재한다. 그러니까 달콤함이라는 말이 있기전에 단맛을 지닌 식품이 먼저 존재했다. 단맛을 지닌 식품 덕분에 달콤함이라는 언어에 담긴 개념이 생겨났다. 따라서 단맛을 지닌 먹을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달콤함이라는 말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유를 곁들인 초코파이는 그러나 이러한 일반론을 역전시킨다.
1-2. 초코파이를 먼저 한입 베어물고나서 그 입자들 사이로 흰 우유 - 특히 적당히 데운 우유를 공급해 스며들게 한다. 우유가 충분히 스며들어 초코파이 입자들(초코 코팅, 숙성된 빵, 마쉬멜로로 구성된 입자들)과 하나가 되는 순간 달콤함이라는 일반명사는 초코파이와 동의어가 된다. 일반명사가 초코파이라는 특수명사로 전락하는게 아니라 초코파이라는 특수한 물리적인 존재가 달콤함이라는 일반명사에 담긴 개념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일반명사에 담긴 개념은 플라톤의 관점에서 보자면 오히려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이상적 형태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달콤함이란 개념은 단맛을 발하는 음식들이 그림자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하나의 원형으로서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유와 함께하는 초코파이는 동굴을 벗어나 단맛의 이데아로 회귀한다고 볼 수 있다. 회귀라는 말은 원래 지니고 있던 지위를 회복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니까 초코파이는 원래부터 달콤함의 원형이다.
2-1. 초코파이 세개를 연달아 섭취한 남성은 외출할 때만 입는 까만색 니트를 입고 먹었다. 외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출용 니트를 집 안에서 입고 있어야 했다. 초코파이를 섭취하는데에는 어느정도의 격식과 절차가 필요하다. 의복을 정비하는 일에는 단순히 물리적인 현상을 넘어서 심리적 상태를 정돈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은 더러워진 옷을 세탁하고, 정성스럽게 다림질하고, 단정하게 착용함으로서 마음가짐을 정돈한다. 마치 반지름 5센치도 안되는 초코파이라는 한 물질 덩어리가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승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리적 세계 즉 형이하학적 세계에서 추상적 세계 즉 형이상학적 세계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블랙 니트의 착용은 감각적 달콤함을 넘어서 개념적인 원형으로서의 달콤함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드러난다.
2-2. 까만색 니트가 외출용 의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초코파이 섭취역시 야외에서 이뤄지는게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3개의 초코파이는 명확하게 집 안에서 섭취되었다. 그 이유는 마지막 세번째 논의로 이어진다. 침대에 걸터엎드려 먹었다는 부분 말이다. 걸터 앉는것도 아니고, 어색하게 있지도 않은 '걸터 엎드려'라는 말을 사용했다는데 핵심이 있다. 나가기도 뭣하고, 책상에 앉기도 뭣하고, 그렇다고 침대에 온전히 눕거나 업드리기도 뭣한 상황 - 3개의 초코파이를 섭취한 남성의 허리가 아작났다는 것. 그래서 우측 요추 부근의 신경 통증이 번져오면 언제든 업드려 디스크 사이의 간격을 늘려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 남성은 행위에 따라 장소를 가능한한 분명히 구분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자동으로 휴식모드가 되고, 침대에 앉거나 누우면 자동으로 취침모드로 접어든다는 것.
3-1. 그러니까 이렇게 명확하게 휴식이나 업무, 취침모드 등과 대응되지 않는 새로운 장소 및 환경적 조건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앉거나 누우면 자게되므로 앉은것도 눕는것도 아닌 어중간한 자세조건 - 기존의 분절적 언어체계에는 담기지 않는 상태를 발굴해야만 했다는 것. 그게 바로 '걸터눕기'였다. 까만 니트를 입은 남성은 초코파이 3입을 침대에 걸터 엎드려 먹었다. 걸터 앉는다는 표현은 있어도 걸터 눕는다는 표현은 없다. 표준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말이다. (이렇게까지 쓰고나서 사전을 뒤져봤을대 걸터 눕다가 발견된다면 낭패다.) 걸터누운 자세에서는 잠이 들지 않는다. 아직 특정한 행위의 발동과 연결되지 않은 자세 및 환경에 자신을 위치시킴으로써 잠이 들지 않고 타이핑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 지극히 형이하학적인 대상에 대한 지극히 형이상학적인 광고 한편을 써낼 수 있었다는 것.
3-2. 3개의 초코파이를 섭취한 남성의 허리가 아작난 것이 3개의 초코파이를 섭취했기 때문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겠다. 초코파이는 오히려 아작난 허리의 통증을 달콤함이라는 연고로 치유해줬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겠다. 그리고 이 부분에서 초코파이는 마지막 변환의 단계에 접어든다. 개별적인 물리적인 대상이 주는 특정한 감각적 자극으로서의 단맛이, 달콤함이라는 일반명사에 담긴 개념적인 이데아로 한차례 발돋움을 했고, 이제는 형이하학적이건 형이상학적이건 달콤함이라는 범주를 벗어나 고통의 치유라는 새로운 차원의 속성으로 확장됐다는 것. 초코파이는 달달한 과자를 넘어서 달콤함의 이데아이고, 미각이 지닌 스펙트럼을 넘어서 고통을 치료하는 의학품이다.
4. 네번째 초코파이를 먹는다. 초코파이를 먹는다. 약국에서도 초코파이를 판매하는 그날까지. 혹은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