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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Apr 03. 2024

걸어가는 보행자의 세계.
일어서서 쓰는이의 세계.

25분짜리 알람을 맞춘다. 그렇게 조건부로 다시 책상 앞으로 복귀했다. 허리가 완전히 아작나지는 않은 모양이다. 감사할 일이다. 25분 알람이 손목을 윙윙 울리면 일어섰다. 그리고 USC 캠퍼스를 걸었다. 멀리, 먼곳에 이름모를 산자락이 보였다. 해가 지고 있다. 해가 넘어가는 방향이 아니라서 태양이 보이진 않지만 서서히 번져가는 오렌지빛이 산머리로 내려가며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내가 선 땅의 끝이 보인다는 것. 그 지점 넘어에는 둥근 지구의 반대편 땅이 이어져갈 것이다. 그러니까 보이는 끝이 정말 끝은 아니다. 


지평선이 보이는 지점까지 시선이 탁 트인 공간을 만드는건 중요한 일이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새삼스럽기 그지없는 넓은 세상 타령이지만 오늘은 타령을 하기에 좋은 날이다. 핵심은 걸어가는 발걸음에 있다. 끝이 두렵다는 생각은 정말로 두렵다. 끝이 보이고, 그 끝을 향해간다. 세상을 애정할수록 끝은 더 두렵지 않을까. 세상은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끝과, 시간이라는 차원 속에서 눈으로 보는 끝은 또 다르고, 멈춰서 바라보는 세상의 끝과 움직이며 바라보는 세상의 끝도 역시 다르다. 이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 무슨 타령인가. 그게 오늘 쓰는 글의 주제다. 


끝을 향해 걸어가는 보행자에게 세상의 끝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걸음 다가서면 세계의 끝도 한걸음 물러선다. 사실 이 두 문장으로 글의 주제는 다 전달한 셈이다. 나는 이미 이 글 한편이라는 세계의 끝을 확인한 것과 다름없다. 여기서부터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과연, 이미 목격한 세계의 끝일지라도 문장을 통해 한걸음 다가서면 세계의 끝도 한걸음 물러설 것인가. 그렇게 '한때' 내가 목격했던, 그게 끝이라고 여겼던 세계의 한 지점 역시 사실은 정말 끝은 아닌것으로 드러날까. 


25분짜리 알람이 울린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전동식 책상을 키높이로 조정한다. 일어서서 쓴다. 사실 이런 것이다. 똑같은 조그마한 방이지만 앉아서 보는 내 방이라는 세계와 일어서서 보는 내 방이라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 똑같아 보인다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를 바라본다면 차이가 보일 수 밖에 없다. 아무렇게나 벗어둔 네이비색 모자의 보이지 않던 윗둥이 눈에 들어오고, 얼기설기 삐뚤빼뚤 대충 개어서 건조대 위에 올려둔 티쳐츠들의 내모난 모양새도 눈에 들어온다. 창문너머 듬성듬성한 정원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거리를 지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가 휘-----------ㄱ 지나는 모습도 보인다. 


세상의 끝을 확인한 뒤 그 끝을 향해 걸어가는 걸음을 따라 이동하는 끝을 세상은 보여주지 않을때도 많다. 빌딩숲이 가로막고 담장이 가로막고 포장마차가 가로막고 술먹자는 친구의 카톡이 가로막고 팀장님의 업무지시가 가로막기도 한다. 혹은 울렁울렁 비오는듯 고이는 맑은 액체가 가로막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어차피 유한한 세계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삶에대한 회의감이 북받쳐오고, 그 회의감이 또다른 가로막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세상의 끝은 걸어가는한 걸음을 따라 똑같이 이동한다. 중간에 이런 저런 가로막에 가려 이동하는 세계의 끝 - 끝없이 새로워지는 세계의 끝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걸어가는 세계의 끝은 사실 끝이 없다. 


한때 끝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의 끝에 다다르고 나면 사실 그게 긑은 아니었다는걸 그렇게 알게된다. 이 글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다. 아마도 내 사고방식의 특성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했던 말이다. 한 시점에서 세계의 끝을 물리적으로 눈앞에 보여주는 탁트인 캠퍼스와 같은 공간이 그래서 중요하다. 걸음에 다라 시시각각 멀어져가는, 실시간으로 동기화되는 세계의 끝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반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세계의 끝이 정말로 끝이라는 생각으로 멈춰버린 보행자에게 세계의 끝은 정말로 더이상 이동하지 않는다. 끝이라는 생각 - 혹은 착각 - 으로 멈춰버린 이의 세상에는 정말로 마침표가 찍힌다. 


세계를 나와 분리해 하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객관적 세계관"에 익숙한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건 낭설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관찰자로서 내가 걸어가기로 마음먹으면 세계도 함께 확장되어간다고, 반대로 내가 멈추기로 마음먹으면 세계의 테두리 역시 그 지점에서 굳어버린다고 말한다면 --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세상은 원래, 지구는 원래 동그랗단다 이 쪼다야 지구과학 시간에 졸았니, 라고 말하겠지만 지구과학 교과서는 삶의 지침서가 되지 못한다. 교과서의 지구 사진과, 지금 내가 밟고있는 270mm 남짓의 눈곱만한 크기의 지구의 일부 중에서 무엇이 진짜 지구일까. 


걷다보면 이렇게 진짜라는 말의 진짜 뜻도 모호해지고, 뜻이라는 말의 뜻도 모호해지곤 한다. 단어들의 진짜 의미라는건 사전을 뛰쳐나간 세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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