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소로 Apr 05. 2024

팁을 받았다. 나를 만난다.

@Habitat LA ReStore

가로 4등분으로 꼬깃꼬깃 접힌 1달러 지폐 네장을 팁으로 받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팁이란걸 받아봤다. 50대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내가 자동차 뒷좌석에 실어준 가구가 걸프렌드를 위한 선물이라고 했다. 아주 높은, 하이톤의 소녀같은 목소리였다. 자원봉사중이라서 팁 같은걸 기대하진 못했는데, 예상을 못한 탓인지 아무런 생각도 판단도 없이 그저 고맙다며 덥썩 받아버렸다. 좋은 하루 되라며. 


해비타트 LA 지사에 근무하는 내 수퍼바이저는 팁을 받아도 괜찮냐는 내 물음에 문제 없다고 얘기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곰곰이 아줌마와의 대화를 곱씹어보니 걸프렌드라는 단어가 역시 (1) 마음에 걸렸다. (2) 튀었다. (3) 관심이 갔다. 동사를 세개씩이나 나열한건 흔히 말하는 PC랄까, LGPTQ에 대한 지각있는 단어를 골라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의무감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것도 없이 그 대화의 순간은 그저 지나갔다. 숱하게 날아다니는 하늘에 참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간다. 


학교 다니느라 바빴던 3년여의 시간보다 이제 고작 두번 들렀던 해비타트 가구 매장에서 더 느끼는게 많다. 그건 거짓말이고, 완전히 다른류의 경험이라 새롭달까. 아마 어느정도 제한된 연령대 중에서도, 학과에 대한 관심사로, 또 관심사에 대한 지적 수준에 따라, 또 학교가 추구하는 건축에 대한 태도와의 부합 여부에 따라 거르고 걸러진, 극히 제한된 부류의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에 따른 한계일 것이다. 그런 경험에서 느끼는 바라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어느정도 틀이 지어질 수 밖에 없다. 


봉사 이틀차의 걸프렌드 아주머니 이전에, 첫날 얘기 나눴던 흑인 할머니는 미국의 정치에 대해, 그리고 군대에서 전사한 남편과 아들에 대해서 얘기했다. 트럼프가 얼마나 혐오스런 정치인인지, 다가올 미국 대선에서 또 한번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아, 저기 할머니 저는 사실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인이라 미국 대선엔 참여를 못하는데요 - 하고 말하기엔 할머니의 목소리에 스민 진정성같은게 너무 촉촉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오는 11월 5일 한표를 행사할 사람처럼 귀기울여 할머니의 얘기를 들었다. 


그러다 왜 군대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할머니의 전사한 남편과 아들 얘기가 먼저였는지, 내 복무 얘기가 먼저였는지 애매하지만 어찌됐든 할머니는 내 복무지에 개의치 않았다. 주한미군이라고 생각했던걸까 하고 할머니의 머릿속을 합리적인 추론으로 재구성해보지만 그게 중요한건 아닌 그런 대화였다. 그 대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Your Generation"이었다. Your generation should speak up. Your generation should let the next generation know it matters to speak up to have a voice. 


고백건데, 할머니의 모습을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행색'이라는 단어로 압축하고 있었다. 1-2퍼센트, 혹은 그 이상의 부정적 뉘앙스가 가미된 용모를 일컫는 단어중 하나 말이다. 한손에 지팡이를 짚고, 그리 정돈되지 않은 회색 니트에 멋대로 삐져나온 흰색 내의가 왼쪽 어깨선을 따라 드러나던 그 모습. 더 솔직하자면 언어도 어딘가 어색한데다 한국에서 복무한 나에게 미국 정치판 이야기를 하고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이야기를 하는걸로 봐서, 어딘가 모자라신게 아닐까 하는 가능성까지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미국 정치의 현주소와 세대간에 전수되는 목소리의 중요성에 대해서 - 그런 류의 논지를 피력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폐기해야할 가능성이었다. 


모자람은 내 몫. 아직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모자람이다. 어릴적에 몫이라는 단어의 철자법에서 느끼던 그런 모호함과 어려움이 있다. 사람의 역량은 지능보다는 신념에 더 큰 영향을 받는건지도 모른다. 경제적인 하층민이 주 고객인 곳에서 오히려 더 큰 것들을 배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얻었다면 해비타트가 폐가구를 기부받아 판매하는 이 매장에서는 태도를 배우게 된다. 다섯명 넘는 손님들이 나에게 테이블이며 옷장이며 의자 등의 가격 문의를 해왔다. 물론 나는 단 하나의 문의에도 확답을 줄 수 없었다. 나는 소품과 가구를 운반하고 정돈할 뿐 판매에 관한 업무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기 때문이다. 허둥지둥, 가격정보를 아는 직원을 찾아 매칭시켜주기에 바빴다. 허둥지둥? 아둥바둥?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내가 나를 쫓는 사람처럼 말이다. 좀 무거운걸 날랐더니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 덕분에 내가 가진 편견들, 내가가진 초조함, 그런 것들을 만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걸어가는 보행자의 세계. 일어서서 쓰는이의 세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