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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Apr 18. 2024

스스럼없이 주저앉는 땅바닥과 글바닥의 청결에 대하여

공원 잔디밭에 누워있는 사람들. 

도서관 맨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털썩 주저앉아서 책읽는 사람들. 

집 안에서도 밖에서 신던 신발을 신는 사람들. 


이렇게 묶어서 미국 사람 - 혹은 서양인들의 땅바닥에 대한 인식을 곰곰이 들여다보려는 생각이다. 처음으로 착안하게 된 계긱는 아마 2학년 학기말 스튜디오 작품을 하던 날이었을 것이다. 카이 다니엘이라는 미국 친구는 2층 구석편에 짱박혀서 까만색 아크릴 건물모형을 조립하고 있던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아마도 그때 뭔가 대화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그렇다 쳐도, 내 주변이 온통 사포로 갈아낸 아크릴 가루천지에, 버젓한 의자랄게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카이의 그런 행동은 아무래도 예상 밖이라고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먼지 구데기인 학교 맨바닥에 양반다리 비슷하게 하면서 털썩 앉더니 대화를 얘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은 모두 날아가고 지금까지 남은건 이야기가 이뤄진 형식밖에는 없다는게 요점이다. 나는 의자 비슷한 어딘가에 앉아서 아크릴 조각들을 본드로 붙이고 있었고, 카이는 맨바닥에 주저앉아 처음으로 대화라고 할만한 대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카이는 분명히 이야기를 마친뒤 일어나면서 엉덩이를 털지 않았다. 아니 바닥에 닿았던 바짓자락 어느곳도 스치는 시늉조차 카이의 손은 지어내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의 시각으로 카이의 행동을 기술하자면 이렇다. 아니 집 밖에 나가서 그렇게 땅바닥에 앉으면 어떻게 하냐고. 


아니 집 밖에 나가서 그렇게 땅바닥에 풀썩 앉아버리면 어떻게 하냐는 문장을 하나씩 조각조각내어 살펴보자. 몇가지의 중요한 조각들로 이루어진 문장이니까 말이다. 첫번째는 집. 두번째는 밖 (그에 대한 반대개념으로서의 안). 세번째는 땅바닥. 네번째는 행위의 주체가 앉는다는 행위가 되겠다. 행위는 제외하고 공간적인 개념 세가지를 재구성해보면, 집의 안과 밖, 그리고 위와 아래(바닥)라는 마치 좌표평면같은 영역이 구성된다. 나의 의아한 질문문은 집의 바깥, 그리고 집 바깥의 아랫 바닥에 대한 특정 시각을 전제로 발화된 문장이었다. 


아마도 집 바깥의 아랫바닥에 대한 시각에 있어서 카이와 나 사이에는 어느정도 격차가 있는게 분명하다. 나에게 있어서 집밖 바닥은 여기서 간단히 말해 더러운 공간이다. 그래서 함부로 몸의 일부를 접촉시켜서는 안되는 곳이다. 그래서 집밖의 바닥과 마르고 닳도록 접촉하는 신발은 집 안에는 들어놓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집 안의 바닥은 집 밖의 바닥과는 달리 청결한 공간이고 마음껏 몸을 뉘이고 앉혀서 접촉해도 상관없는 공간이다. 이건 여느 도서관 바닥에도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시각이다. 지하철역의 바닥도 마찬가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모든 공간에 부정적 의미가 부여된다. 


잔디밭은 다르다 싶지만 잔디에 앉거나 누워도 대번에 쯔쯔가무시라는 정체도 정확히 모르는 무슨 벌레인지 뭔지가 먼저 떠오르고, 결국 잔디의 뿌리는 역시나 흙바닥이라는 점에서 바닥은 바닥일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이미 무의식을 잠식하고만다. 카이는 왜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는게 아무렇지 않았을까. 내가 보진 않았지만 카이는 왜 집에도 신발을 신고 들어갔을까. 카이에게 집 밖의 아랫바닥은 그렇게 더러운 공간으로 여겨지지 않는걸까. 이럴때는 직접 물어보는게 최고의 선택이지만 이제 카이는 내곁에 없다. 


내곁에 없다는 단어선택이 끌고 들어오는 크나큰 오해처럼, 집 밖 땅바닥에 대해서도 뭔가 크나큰 오해가 스며든건지도 모른다. 카이와 내가 아무런 사이가 아닌 친구일 뿐이고, 지금은 졸업한 탓에 당연히 연락이 쉽지않아진것게 전부인것처럼, 외부의 바닥 역시 집안 바닥과 별반 다르지 않은 그저 바닥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바닥이라는 공간을 집을 구성하는 외벽을 기준으로 안과 밖으로 칼같이 구분하는 태도 이면에 뭔가가 더 숨어있으리란 의혹을 떨지지 못했다. 


그러나 글은 끝을 맺는다. 

풀리지 않은 의혹이 어지럽게 흩어진 글바닥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풀리지 않은 의혹이 어지럽게 흩뿌려진 글바닥이 지저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깨끗함과 지저분함이라는 개념의 체계 자체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게 아닌가. 

이렇게 글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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