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든 나쁘든 문장을 쓰기로 마음먹었던걸 한동안 까먹고 있었다. 다시 그 사실을 상기하고 나서 택한 소재가 드라이월이다. 아주 건조한 글을 쓰게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건조한 글이라고 다 나쁜건 아니다. 건조한 글감은 건조한 글에 담는게 오히려 좋다. 드라이월은 충분히 건조한 글감이다. 드라이월에 대한 이야기는 건조한 글에 담는게 답이다. 찬 맥주를 얼린잔에 담는것처럼 말이다.
이번주 내내 공사장에 나가서 한 일은 드라이월을 잘라서 벽체에 붙이는 일이었다. 나무 각목으로 구조를 세운 뒤에 드라이월을 붙인다. 지금 짓고있는 집은 총 네가구가 하나의 빌딩에서 살아가는 다세대 주택이다. 가구와 가구 사이에 벽이 들어선다. 벽이 도대체 왜 30센치가 넘어갈만큼 두꺼울까 늘 궁금했다. 아니 사실은 30센치가 넘어가는지 마는지에 대해서도 아리송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건축을 공부한다고 공부한 입장에서 참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건설 현장에 나가서 일하면 몸은 조금 힘들지만 배우는것 느끼는것들이 많다. 단순히 드라이월이 뭔지, 벽두께가 얼마인지를 배우는것만은 아니다. 여기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방식을 배운다. 어디든, 한국이든 미국이든, 다른 어느곳이든 사람이 함께 일하는게 거기서 거기일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뭔가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 아직은 문장으로서 그 차이를 옮기기에는 공사장에서 보낸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다. 조금 느리다, 혹은 느긋하다고 하는게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다.
전문적인 일꾼들만 참여하는게 아니라서 시행착오가 잦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격어보는것만큼 값어치 있는 일도 없다. 어쩌면 나는 시행착오를 마음껏, 두려움없이 겪어보기 위해서 현장에 나가는건지도 모른다. 아니 시행착오를 격어보기 위해서라기보다 시행착오를 겪게될까봐 두려운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나가는 건지도 모른다. 시행착오가 자연스러운 과정의 일부라는걸 배워가는게 참 좋다. 잦은 시행착오만큼 대화가 많다. 농담도 많고, 일에대한 이야기도 많다.
실수할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성장이 거기서 멈춰버린다. 실수를 해봐야 크는건 자명한 일이지만 문제는 마음껏 실수할 수 있는 환경을 찾기가 쉽지않다는 것이다. 실수할 기회만큼 값진것도 없다. 이 공사현장은 그런 점에서 이상적이다. 건축이 있다. 건설이 있다. 그리고 실수해볼 기회가 있다. 그 밖에 다른것들도 있다. 팀원이 있다. 망치가 있다. 드릴이 있다. 줄자가 있다. 기타 등등 다 있다. 망설임 없이 부담없이 모르는걸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아니 기회들이 있다. 실수하더라도 뭔가를 해보는 일 자체를 격려해주는 수퍼바이저들이 있다.
일견 단순해 보이지만 처음이라서 막막한 것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차차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알고보면 대단하지 않았던 것들이 대단하지 않았다는걸 알려주는건 여러번의 시행착오들이다. 드라이월을 자르는 일이 그렇고, 잘라낸 드라이월을 나사못으로 고정하는 일이 그렇다. 사실 드라이월 작업은 호흡기에 좋지않다. 그 생각도 못하고 정신없이 자르고, 드릴로 구멍을 뚫고, 고정했다. 시행착오에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고있었던걸까.
여기까지, 거의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글이지만 이것으로 한편이라고 할만한 길이에 이르렀다. 공사 현장 첫날 내가 잘랐던 엉성한 드라이월과 같은 글이다. 그러나 드라이월 설치에 중요한건 예쁜 모양이 아니라 그 기능이다. 못생긴 드라이월도 예쁜 드라이월과 똑같이 화재의 확산을 지연시키는 기능을 한다. 불길을 지연시키고 소방차가 출동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준다.
이 글한편은 어떤 불길을 지연시켜줄까. 이 글 한편이 전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어느정도일까. 보통의 1인치 두께 드라이월은 약 30분간 불길을 지연시킨다. 이 글 역시 30분 정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글이 타오른다는건 무슨뜻일까. 문장이 탄다는건 문장을 읽는다는 뜻일까. 몇분을 타오를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시행착오라는건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