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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소로 Sep 04. 2024

자메이카

feat. Elliot

긴 도입부

그렇다. 그냥 쓰기로 했었다. 항상 그걸 까먹는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얼마나 좋은 문장을 쓰든, 문장을 계속 써내려가는 호흡이 더 중요하다는 것. 잘 쓰는것 보다, 쓴 결과보다는 쓰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 어째서 그런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리길 반복하는지 의문이다. 이리저리 휩쓸리다보면 그렇게 조용하지만 중요한 사실들은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모으고, 시간을 들이고, 전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에너지를 들여서 만들어진 컨텐츠들이 넘쳐나니까. 길을 가다가 전광판에 걸린 이미지 한장만 해도 그렇다. 유튜브 영상을 보기전에 나오는 광고도 마찬가지다. 아니, 유튜브 영상 자체 역시 두말할 것 없다. 그렇게 똑똑하고 위트있는 사람들이 대단한 인맥과 자본과 자원을 투여해 만드는 컨텐츠의 목적은 대체로 비슷하다.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 눈과 귀가 잠깐이라도 조금이라도 더 오래 그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 


그렇게 30초 아니 10초, 5초, 다만 1-2초라도 대중의 시선을 빼앗기 위해 공들여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쏟아지는 세계다. 그런 이미지 형태의 컨텐츠들은 엄밀히 말해서 나에게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기 보다는, 정확히 말하자면 다른 어떤 중요한 사람이나 소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어느 유명한 누가 나와서 이야기를 한다거나, 어느 경험많은 사람이 커리어 업그레이드를 위한 꿀팁을 준다거나, 그렇게 유용한 정보는 없지만 배꼽잡는 웃음이나 귀여운 애완 동물로 시간을 순삭시켜 주는 컨텐츠들. 나에게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고 노하우를 주고 힐링을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말로 웃고 감동받고 팁을 얻기도 하지만, 그런 영상들의 내용 자체는 모두 중요한 타인에 대한 것들이다. 


나에게 있어서 진짜 중요한것들은 내가 이미 알고 있을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무엇을 해야할지 몰라서 책상앞에 멍하게 앉아있는다. 컴페티션 마감일이 다가온다. 마감일이라는 단어도 쓰기가 꺼려진다.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어떻게 도망치는 대신 직진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내용없는 글을 쓰는 시간은 흘러흘러 어디에 가 닿을 것인가. 


#이제야 서론

주말에 볼드윈 힐 트레일 코스를 따라 걸으면서 다시한번 개천을 건넜다. 개천은 흘러서 플라야 델 레이 바닷가로 이어진다. 개천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그 역시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개천이다. 중요한 것들을 잊어버린다. 발로나 크릭, 메모앱을 펼쳐보고 나서야 떠오르는 이름이다. 흐르는 개천을 가만히 쳐다보다보니 잔잔하고 수위가 낮은 물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건지 애매했다. 당연히 바다가 있는 쪽으로 흐르겠지 싶었지만 적어도 육안으로는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결국 저쪽에서 떠내려오는 지푸라기 같은 물체가 이동하는 방향을 통해서야 알 수 있었다. 


무슨 글이든 쓰자는 생각으로 쓴 글 역시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어디로 흘러가는가, 질문을 던져보면 발로나 크릭이 그랬던 것처럼 그 방향이 모호하기만 하다. 이 글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뭔가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 글이 떠내려가는 방향을 육안으로 분별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가지 명확한 것은 스스로 써내려가는 문장의 흐름을 이렇게 지켜보는게 꽤 오랜만이라는 사실이다. 공사장 동료에게 새로운 툴벨트를 선물받고 나서 어느새 2-3주일이 지나갔다. 시간은 그렇게 빠르다. 시간에 한가지 좋은점이 있다면 그건 흐르는 방향을 육안으로 구분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시간은 늘 한 방향으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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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나 크릭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내 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모호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경험을 했다. 잊고 있었지만 글을 쓰다보니 문장이 그날의 기억으로 흘러들었다고 해야겠다. 처음으로 크루 리더 CREW LEADER 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노란색 반팔티를 입고 공사장을 찾았던 날. 나는 그동안 몇 번 인사한 적이 있는 봉사자 엘리엇과 함께 일했다. 2층 벽체 프레이밍을 마치고, 프레임 외부에 얇은 합판을 부착하는 일을 마무리하는게 우리 과제였다. 네 다섯장만 더 붙이면 마무리될 작업이었지만, 길이를 측정하고, 패널을 찾아 2층으로 운반하고, 얇은 스트랩과 본판을 별도로 자르는 등 작은 고려사항들이 많은 일이었다. 


그러나 엘리엇과 손발이 잘 맞았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군가와 함께, 상대방을 이끌어가며 일하는데 이제 여유가 생겼다는게 느껴졌다. 조급함에 쫓기지 않는다. 움직이기 전에 상대방과 함께 어떤 단계들을 거쳐 작업을 진행할지, 그래서 지금 바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고 생각을 맞춰나가는데 익숙해졌다. 작업에 대한 중압감에 눌려서 상대방과의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문제도 이제는 꽤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됐다. 리더로서의 경험이 쌓이고 있다는건 내가 이끄는 동료들의 표정이나 작은 몸짓만 봐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자연스러운 것보다 아주 조금더 긴 대화의 공백이나, 불필요한 자리에 들어서는 공백, 혹은 미세하게 일상을 벗어나는 제스쳐 같은 것들이 말해주는 것들이다. 


엘리엇과 함께하는 작업은 발로나 크릭이 바다로 흐르듯이 천천히 조용히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내가 '혹시나'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혹시나 지금 나와 하는 작업이 그리 재밌지 않으면 편하게 다른쪽으로 가봐도 좋다고 나는 엘리엇에게 말했다. 엘리엇은 그게 무슨말인가 싶어 그날 처음으로 갸우뚱 하는 모습이었다. 간혹 스텝들이 봉사자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 우회적으로 내치기 위한 말처럼 들릴까 싶어서 나는 한번 더 친절한 어투로 말을 반복했다. 이 작업이 별로 재밌지 않으면 다른 작업을 하러 가는 것도 괜찮아. 엘리엇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하겠다며 반대편에서 청소를 하던 스텝에게 가서 청소를 도왔다. 


돌아보면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리더십에 대해서 느끼는 것들이 많았다. 생각이 바뀌기도 많이 바뀌었다. 가장 중요한건, 한국에선 내가 능력이 있으면 대체로 등떠밀려 마지못해 싫은척 수락하는게 리더의 자리였지만, (요즘은 적극적인 리더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느끼는 리더십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는 스스로 리더가 되기를 바라고 리더로서의 자질이 있다고 믿는 자신감이다. 스스로 나서서 리드하지 않는 사람을 남들이 등떠밀어 리더로 새우는 경우는 한번도 볼 수 없었다. 스스로 리더십을 발휘할만한 자신감과 의욕이 없다면 그를 믿고 따를 이유도 없다. 임명장이 아니라 마인드가 리더를 만드는 것. 리더십은 스스로를 리더로 믿는순간 시작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순간, 혹은 그런 자신감을 내려놓는 순간 끝난다는게 그동안, 그리고 엘리엇과의 작업에서 느낀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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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배려보다 확신이 필요하다. 엘리엇처럼 좋은 파트너와 함께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리드하는 쪽의 확신이 필요하다. 그게 나에게 없었고, 그래서 그날의 작업은 막을 내렸다는 사실. 확신의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회가 와도 기회를 믿지 못해서 놓치거나, 찾아온 기회가 도망칠가봐 두려워서 놓치거나, 찾아온 기회의 열매를 너무 일찍 수확하려다 놓치거나. 그런 무지와 의심, 불안과 욕심의 이면에는 확신의 부족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말들로 시작한 글 치고는 길이가 꽤 길어지고 있다. 바다는 도대체 언제 나오는건지 나 역시 의문. 그러나 이렇게 길게 굽이굽이 흘러왔다면 지금 이 문단이 바다가 아니어야할 이유가 없다. 끝이 불분명한 지난한 과정을 거쳐온 여정일수록 종착역은 그렇게 갑자기 맥락없는 결말처럼 시야에 들어오곤 한다. 자메이카에 지어질 누군가의 은퇴 주택이 나의 작품이 될 수 있다는 확신, 그런 단단한 확신을 가져야할 순간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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