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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Oct 07. 2020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다

나의 오랜 친구, 계속해서 함께 가야 할 감정을 바라보기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물음표다. 극복했다고 생각하면 곧 또 찾아오는 것, 괜찮아 지다가 다시금 하강하는 감정. 그것이 슬럼프니까. 결국에 나는 슬럼프와 함께 가야 할 것이다. 성장하지 못하는 멈춰 있는 순간에 느끼는 슬럼프와 고통스러워하며 성장하는 나 사이를, 앞으로도 떼어놓지 못할 것이리라.


그런데도, 매번 슬럼프가 올 때마다 특히 이번처럼 꽤 길게 왔을 때, 나를 위해 정리되어있는 방법이 있으면 했다.


슬럼프에 빠진 상황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본다. 

상세히 정리할수록 해결 방법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아래와 같이 글로 쓰면서 정리했다.

1. ‘내가 어떤 상황인지’
2. ‘그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3. ‘그 감정을 다루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해야 할지’



1. 나는 어떤 상황이었을까?

상황 1.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자신과 약속했던 모닝 루틴을 지키지 못하자 스스로 짜증이 났다.

재택을 하자 집에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많으면서 개인적인 시간과 회사 업무를 구분하지 못했다. (집에 있는데 자꾸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출퇴근할 때는 나름 시간을 쪼개 쓰는 방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한 장소에 머물러 버리니, 시간을 쪼개 쓰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상황 2. 요가 공부를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피하고 싶었다.

잘하고 싶은데 자신은 없었다. 그동안 새벽 5시에 일어나는 모닝 루틴 중 아침에 요가하면서 ‘티칭’을 연습해야 했는데 사실 가르치는 것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한 상태였다. 몸의 상세한 상태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선생님은 몸으로 좀 더 요가를 많이 연습하면 괜찮아질 것이라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내 안의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언젠가 낯부끄럽게 잘하지 못하던 내 모습이 남아서, 나를 괴롭혔다.


2. 그 감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감정의 이유 1. 나는 시간을 쪼개 쓰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쓰며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니 답답했다. 

시간을 쪼개 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집중력을 높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을 쪼개 쓸 땐, 지금까지 ‘장소의 변화’가 기준이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요가방에서 요가를 하는 식. 나는 생각보다 장소의 환기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 기준이 유난히 높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루틴이고, 계획이고 지키지 못하는 게 답답해서 짜증이 났던 것. 
 

감정의 이유 2. 왜 피하고 싶었을까? 잘하고 싶은 욕심만 앞섰기 때문이다. 

무조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슬럼프에 기여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든데, 또 어려운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일어나기 싫었던 게 아닐까? 

자주 느끼는 사실이지만, 나는 나에게 너무 매몰차다. 그게 나를 성장시키는 요소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적당히 하자’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매몰찬 태도는 가끔 좋은 결과를 낳지만 자주 피폐한 정신을 동반하기도 하니까. 


3. 그 감정을 다루기 위해서 어떤 시도를 해야 할까


해결방법 1. 우선 쉬는 장소와 일하는 장소를 분리한다. 그리고 일하는 장소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 차도록 의도적으로 ‘만들었다’

예를 카페에서도 뜨거운 햇볕 아래서 앉아 있기를 좋아하던 것을 따라, 좋아하는 공간인 베란다 한복판에 일할 장소를 만들었다. 창문을 열면 새소리도 나고, 매미 소리도 나는 곳. 집의 모든 나무가 베란다에 있어서 숲 속 향기도 나는 곳.  노래도 틀었다. 평소 좋아하던 음악들을 플레이리스트로 만들었다. 덕분에 기분 좋게 집중할 수 있는 장소가 만들어졌다 (업무용 의자를 사야 할까 고민되긴 한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

집에 있으니 출근하면서 들렸던 맛있는 카페의 자몽 주스, 브라우니 등이 그리워졌다. 그래서 집에 좋아하는 빵과 차를 사서 채워 두었다. 특히 나는 배가 고프거나, 당이 부족하면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래서 언제든 당 충전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더니 정말 집에만 있음에도 불만이 사라졌다.


해결방법 2. 스스로에게 관대 해지며, 완벽해지고 싶은 마음을 덜어놓고, 하고 싶은 것을 위주로 했다. 

a. 우선 쉬고 싶은 마음이 들면 쉬기로 했다. 

새벽 5시 기상에 요가 티칭 공부까지 둘 다 좀 어렵긴 하다. 아침 7시 정도로 조정했다. 더 자고 싶다면 더 자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닝 루틴을 하지 않고 푹 잠을 잔 지, 벌써 한 달 반쯤 됐다. 자고 싶으면 더 잤고 일어나고 싶은 기분이 들 때 일어났다. 돌이켜보면 그게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너무 오랜 시간 쉰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쉬어야 하는 시간과 속도는 모두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분명 푹 쉬었던 시간이 도움이 돼서 다시 이렇게 글을 쓸 의지가 생겼다.


b. 완벽하게 하기보다, 스스로 수련하며 체득한 내용을 전달한다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어차피 다 잘하는 사람 없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다. 이제 고작 4년 정도 요가한 것으로 누군가를 가르치기엔 너무나 부족하다. 제일 좋아했던 요가 선생님은 요가를 가르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고 했다. '저렇게 잘하려면 무엇이든 10년은 넘어야 하는 거잖아.' 선생님을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이다. 고작 4년 한 거로, 가르치는 것은 처음인데, 얼마나 잘하겠어. 대신 내가 체득한 것들을 솔직하고 가감 없이 알려주자고 생각했다.


c. 하고 싶은 것을 중심으로 모닝 루틴을 바꿨다.

우선 당분간 글 쓰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기로 했다. 나는 나만의 언어로 정리해야만, 마음속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오전 시간에는 아침 일기를 쓰기 시작하기로 했다. (요즘은 거짓말처럼 아침에 일기를 쓰고 싶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 일기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어나자마자 머릿속의 생각들을 쓰레기통에 뱉듯 마구 적어 내려가는 행위다. 예전에 artist way 하는 책을 보고 따라 하게 된 모닝 루틴이다, 아침 일기의 상쾌한 감정과 의외의 아웃풋에 기분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때 아침 일기에 나온 아이디어를 모아서, 나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었는데 1. 직무를 바꾸었고 2. 독립출판을 하게 되었다. 의욕적이고 생산적으로, 나에게 동기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아침 일기는 매우 즐거운 경험이다.

요가는 다시 저녁 시간에 한다. 저녁 시간에 하게 되면 매일매일 못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지만, 매일 해야겠다고 스스로 푸시하지 않기로 했으니 우선 바뀐 방법으로 실행 중이다.



다행히 첫 번째 수업은 편안하게 잘 마무리했다. 


하나의 성취는 이루었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면, 또다시 슬럼프를 겪게 될 것이다. 나에게 슬럼프는 오래도록 함께하는 친구 같은 것,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니까. 그래도 같은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이 글을 돌이켜보고 '슬럼프를 겪는 시간 동안 내가 겪는 감정'과 '객관적인 상황에 대한 분석'을 시도해보려고 한다. 슬럼프를 극복한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대신 나의 오랜 친구,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함께 가고 싶다. 그 과정이 너무 괴롭다면 때때로 무너지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면서. 


고생한 나에게 승질 부리지 말고, 아껴주고 응원하며 오래도록 자신과 행복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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