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페이지, 무너지고 버티는 것도 사람이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겠다는
내 야심 찬 계획은,
엄마와 함께 가장이 되는 순간
보기 좋게 무너졌다.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다 송금하고,
내 손에 남는 건 고작 40~50만 원 남짓.
실적이 곧 월급이었기에
어떤 달은 그보다 더 적을 때도 있었다.
핸드폰 요금, 점심값, 교통비 등을 내기에도
빠듯한 돈으로
공부까지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핑계일까? 아니, 현실이었다.
그렇게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묵묵히 일만 했다.
허무했고, 원망도 들었다.
대학에 다니며 즐겁게 20대를 보내는 친구들.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왜 이토록 고단한 시간을
살아내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욕을 먹고, 실적에 치이며,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걸 포기해야만 하는지.
때로는 다 놓아버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가정형편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겨우 먹고사는 정도.
그다지 화목한 가정도 아니었다.
그래도 열심히 했다.
그게 습관이었고, 책임이었고,
어쩌면 나를 지탱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관리자가 되었다.
교육 실장도, 영업 실장도 해봤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도
조금씩 무너져 갔다.
공황장애, 불안장애가 생겨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했고
불면증으로 수면제도 처방받아야 했다.
그리고
오래 앉아 있는 업무 탓일까?
허리디스크가 생겼다.
4번, 5번 뼈 사이가 눌려
디스크가 흘러내렸다.
병원에선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지만
수술할 돈도, 수술할 시간도 없었다.
그저 주사 치료와 물리치료로
버텨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내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무너졌지만,
또 사람 덕분에 버텼다.
바로, 함께 일하던 동료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막내였기에
언니들이 유독 예뻐해 줬고,
시간이 지나며
언니, 동생들과 수다 떨고,
같이 점심 먹고, 회식하고,
그게 내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시절의 회사 사람들처럼
따뜻한 동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던 어느 날,
연애를 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이라기보단 ‘탈출’이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
그리고 내 가족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