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페이지, 마네킹과 내가 다른 건 생각이 있다는 점.
그렇게 우울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적응이 어려웠던 중학생을 지나
암 투병까지 했던 고등학생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성인이 되어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스무 살 무렵 방황을 많이 했다.
뒤늦게 사춘기가 온 걸까?
대학에 간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고,
혼자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해야 할 시기,
나는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다.
어릴 적 가수를 꿈꾸기도 했던 나는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건 안 되는 일이었다.
“기술이나 배워라.” 아빠는 늘 그랬다.
내가 어렸을 땐 키가 크니 운동을 하라고 하더니,
조금 크니까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그래서 고1 때 미용학원에 다녔다.
당시 우리 집 형편으론 큰 지출이었지만
아빠가 밀어붙였다.
그런데 정말, 나와는 맞지 않았다.
마네킹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겼으니, 말 다했지 뭐....
그래도 아빠가 무서워 억지로 참고 배우다가,
결국 1년도 못 다녔다.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리자
내 예상대로 아빠는 노발대발하셨다.
“네가 하겠다고 해서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학원 보내줬더니, 뭐가 어쩌고 저째?!
그딴 것도 못하면서 무슨 뮤지컬 배우야?
네 학원비로 얼마가 들어간 줄은 알아?”
그 말에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항상 이런 식이였다.
어린 마음에 억울했다.
친구들 아빠와 우리 아빠를 자꾸 비교하게 됐다.
‘딸에게 300만 원 돈 투자한 게 그렇게 생색낼 일인가?
어릴 때부터 하고 싶다는 건 죄다 막으면서…'
300만 원 돈이 결코 작은 돈이 아니란 걸 잘 알지만
당시엔 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아빠의 소유물도 아닌데...
왜 늘 아빠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야 할까?
참.... 억울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고2가 되어선 그럭저럭 학교를 다녔고,
그즈음 늦둥이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다.
그리고 고3.
나는 췌장암 수술을 받았다.
무려 12시간이 넘는 대수술이었다.
엄마 말로는,
수술이 예상 시간보다 너무 늦어지자
고혈압이 있던 아빠가 끼니도 못 챙기고
혈압이 오를 만큼 걱정했다고 했다.
근데 그 말을 들으면서도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감동? 그런 건 없었다.
그저, 낯설고 멀게만 느껴졌다.
암 수술은 생각보다 회복이 빨랐다.
아직 어린 몸이 버텨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정신도 못 차린 채,
스무 살이 되어버렸다.
가출도 해보고,
술 마시고 놀기도 하고,
새벽에 몰래 나가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야말로, 제대로 방황했다.
그렇게 1년쯤, 정신없이 살았다.
그러다 어느 날,
늦둥이 남동생이 눈에 밟히고,
늘 일만 하는 엄마가 너무 안쓰러웠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할 것 같았다.
그즈음, 아빠의 제안으로
엄마와 나는 작은 실내포장마차를 차리게 되었다.
엄마는 평소에도 음식솜씨가 좋았기에
잘 될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처럼 장사는 꽤 잘됐다.
근처 당구장과 공장들이 있어서
2차 술자리로 많이들 들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가게에 손님이 뚝 끊기기 시작했다.
바로
아빠가 장사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