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을 본 뒤 마음이 아픈 이유
은중과 상연
상연이 아프고 죽어가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그녀는 아주아주 고가의 주얼리를 걸치고 나온다. 죽기 전날에는 그녀의 컬렉션 중 가장 비쌀 것으로 보이는 목걸이를 걸치고 은중과 시간을 보낸다. 그녀가 쌓아올린 부의 크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그 값비싼 보석을 두른 상연보다 은중이 더 빛이 난다. 수수한 차림의 낡은 자동차를 몰고 에코백을 들고 반찬을 싸 다니는 은중이 더 아름답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라는 게 이런 걸까? 몸과 마음의 건강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숨길 수 없는 것일까?
죽음과 가까워지는 병든 상연을 그나마 밝혀주는 보석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더 초라하고 앙상하게 느껴졌을까?
나는 그녀들의 대립된 모습을 보고 돈이 란 것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보여주는 대목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성공한 영화사 대표이며 100억짜리 건물의 주인이자 대저택에 살고 있는 상연은 금은보화로 치장해도 초라해 보인다. 마음속에 남은 것이 없는 그녀의 삶이 참으로 안되었다. 삶을 미련 없이 마감할 수 있음이 슬프다. 그녀의 삶은 얼마나 아팠을까.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등지며 얻은 건 결국 죄책감과 스스로 남긴 상처뿐이었을 것이다.
삶을 마감하기 직전 은중이 그녀에게 다시 마음을 열는 과정에서 주고받던 짧은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다. 그간의 뾰족하고 모난 상연 같지 않은 순수함, 진심만이 남은 진심으로 기뻐하는 해맑은 메시지가 그렇게 슬펐다. 마치 죽음에 다다라서야 상처 없던 아이가 된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너를 열렬히 사랑하고 좋아한다고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이 슬펐다.
누군가 은중과 상연을 본 뒤, 그녀들을 그렇게 다르게 만든 것은 엄마의 역할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중의 엄마는 늘 그녀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그녀의 인격적 성장을 위해 그녀의 일상을 관망하며 응원하는 모습이다. 그에 반해 상연의 엄마는 늘 옳은 말을 하며 그녀의 마음에 동조해주지 않고 딱딱한 얼굴로 그녀를 대한다. 그래서 어린 딸이 엄마는 자신보다 자신의 친구를 더 사랑한다고 믿게 만든다. 그것을 바로 잡아주지 않아 결국 어린 시절의 상처로 어른이 된 이후까지 상처 가득한 인생을 살게 만든다.
과연, 상연은 은중의 엄마 같은 사람을 만났더라면 더 사랑이 넘치는 건강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